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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300년전 중국의 기괴한 이야기 500편 ´요재지이´

입력 | 2002-08-09 17:41:00

'요재지이'에는 중국에서 전해지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감귤나무의 사랑을 담은 '귤수'


◇요재지이(총 6권)/포송령 지음 김혜경 옮김/각 권 450쪽 내외 각 권 1만2000원 민음사

중국에는 8대기서(八大奇書)가 전해진다. 명대에 출간된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와, 청대의 ‘요재지의’ ‘유림외사’ ‘홍루몽’ ‘금고기관’등이 그런 책들이다. 이 중 ‘요재지이’(聊齋志異)는 약 500편에 달하는 이야기가 실린 유일한 단편소설집으로 동양고전문학의 보배로 평가된다.

요재는 저자인 포송령(1640-1715)의 서재 이름으로 책 제목은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책 속에는 귀신이 사람과 사랑에 빠져 자식을 낳고, 꼬리 달린 여우가 여염집 부인네를 넘보다가 지혜로운 아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등 이상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중국판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할까.

‘황생이 하청궁에 도착했더니 백모란 한 송이가 꽃봉오리를 머금은 채 아직 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가 왔다갔다하는 사이 꽃이 흔들리며 벌어지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쟁반만한 꽃이 활짝 피어났다. 그런데 꽃술 안에는 손가락 서넛만 한 크기의 꼬마 미인이 앉아 있었다’.(1권 ‘향옥’중에서)

'홍옥'의 삽화.

‘그날은 밤이 깊어서야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소매 안을 더듬어 가지고 온 금귤을 꺼내는 한편 침상맡으로 다가가 종상약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 항아리 입구에서 별안간 ‘쐐애액’바람 소리가 일더니 순식간에 여자를 안으로 빨아들였다.하인은 벌떡 일어나 항아리에 뚜껑을 덮고 부적은 붙이는 한편 곧바로 가마솥에 삶을 채비를 차렸다’.(3권 ‘하화 삼낭자’중에서)

‘사랑 찾아 날아간 혼’ ‘여우 부인, 귀신 부인’ ‘호랑이가 된 사내’ 등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각 이야기에서는 귀신과 여우, 사물의 정령들이 등장해 동양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화려하게 펼친다. 그래서 현대의 중국과 홍콩의 영화나 소설, 회화 등 여러 예술 장르는 끊임없이 이 책의 소재를 차용하고 있다. 장국영 주연의 영화‘천녀유혼’은 1권의 ‘섭소천’을 원본으로 삼았고,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킹 후 감독의 ‘협녀’도 이 책에 실려있다.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쓴 이 책은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내용도 다양하다. 격변기의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해학적으로 묘사한 글이 있는가 하면, 지고지순한 사랑과 환상적인 에로티시즘도 담겨 있는 것. 궁중에서 귀뚜라미 놀이를 즐겨 시골의 서민들이 받는 고통을 그린 ‘촉직’, 과거 시험장의 폐단이 저승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신랄하게 파헤친 ‘석방평’ 등의 작품은 전자의 경우에 속한다. 150편에 이르는 애정소설의 경우 여성을 멸시하던 당대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고귀한 품성과 재능을 지닌 여성상을 그렸다는 점이 특징.

포송룡은 당시의 사대부들처럼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현실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패가 만연하던 당시의 과거 제도아래선 꿈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는 권력에 대한 아부 대신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즉시 기록해두곤 ‘요재지이’의 창작에 몰두했다. 1679년 처음으로 책의 면모를 갖추고 자서를 미리 써놓기도 했지만 그 뒤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보충했다.

책은 작가 사후 50여년 지나서야 완성돼 나왔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국내에서 약 40년 만에 다시 출간되는 완역본. 중문학자 김혜경씨는 약 10년에 걸친 번역과 퇴고 과정을 거쳐 독자들이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두툼한 분량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 미덕. 중국의 역사를 풍속사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어 단순히 읽을 거리를 넘어서는 책이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