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처가 잠시 깨어났다면 난 이렇게 말할겁니다. ‘아처, 보고 싶었어요. 반갑다’고. 아마 아처는 빙그레 웃으며 ‘제인, 내가 그동안 뭘 했지’라고 했을 겁니다.”
6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대천덕(戴天德·미국명 루벤 아처 토리 3세) 성공회 신부의 부인 현재인씨(玄在仁·81·제인 그레이 토리).
9일 고인의 빈소가 있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현씨는 “아처가 2개월이상 혼수상태에 있었지만 다시 일어날 줄 알았다”며 “아처가 평소 입던 옷과 안경도 여기있는 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 청빈과 나눔의 삶을 실천해온 ‘푸른 눈의 성자’ 대천덕 신부. 현씨에게 고인은 신앙의 스승이자 삶의 반려자였다.
1948년 결혼 뒤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두 사람,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바빠 매일 오후4시반 티 타임에 대화의 시간을 가져온 부부.
생전의 대천덕 성공회신부와 부인 현재인씨
남편은 건축기사노조활동, 흑인해방운동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치다 57년 한국으로 향했다. 성공회대 전신인 성 미카엘 신학원을 재건한 그는 다시 65년 강원 태백시의 산골짜기를 선택했다. 기독교 공동체인 예수원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54년의 세월. 이 부부를 둘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들은 언제나 하나였다.
현씨는 빈소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남편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상객들을 맞는 그의 얼굴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따뜻한 미소가 감돌았다.
“서운하지만 준비는 했습니다. 93년 남편이 심장 질환으로 고생할 때 당시 의사는 ‘1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죠. 남편의 대답은 ‘전 벌써 준비가 됐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말이 다시 생각나네요.”
학창 시절 대학의 메이 퀸이었던 현씨는 40년 여름 미국 웨스터민스터 장로교회 청소년 모임에서 고인을 처음 만났다. 그의 기억에 고인은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처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종종 보내온 편지에는 “제인과 함께 티베트로 건너가 천막촌 생활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현씨는 “아처가 나의 반려자일까 고민했는 데 하나님이 어느날 정말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며 “화가로서의 꿈도 있었지만 아처와 함께 하는 삶이 더 아름답고 소중했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제인 그레이(Jane Gray)는 기꺼이 ‘현재인’이 됐다. 성공회의 영국인 신부가 영문 이름에서 의미와 발음을 살려 지어준 이름이다. 고인과 함께 가는 길은 그곳이 이역만리의 낯선 한국이든, 강원도 오지든 문제될 게 없었다.
현씨는 한국은 ‘특별한 땅’이라고 했다.
“아처와 나는 정이 많고 따뜻한 한국 사람을 만나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자주 했습니다. 예수원은 노동과 기도의 삶이 충만한 곳이었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무언가가 부족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현씨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사람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예수원에 머물며 남편의 꿈과 이상이 현실로 바뀌는 과정을 계속 지켜볼 계획이다.
예수원에 안장될 남편의 묘비에는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성경 구절을 새긴다.
요한 복음 7장17절.
‘만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 자신의 것인지를 알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일을 할 때 개인의 영광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리라.’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