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3단(19)이 최근 후지쓰배에서 우승한 뒤 바둑계에선 이 3단을 9단으로 승단시켜 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국내 대회에 이어 세계 대회의 패권을 차지할 만큼 최정상급의 실력이기 때문에 최고 단인 9단을 줘야 한다는 것. 과거 이창호 유창혁 9단이 7단 시절 세계 대회에서 각각 우승하자 한국기원이 두 기사를 9단으로 승단시킨 전례도 있다.
일본에선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이 7, 8단 시절 메이진(名人) 혼인보(本因坊)에서 우승한 뒤 승단했다. 조치훈 9단은 8단 시절 메이진을 따 일본기원이 승단을 제의했으나 본인이 고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승단에 대한 이견도 만만찮다. 3단에서 6계단이나 뛰어 오르는 것은 지나치고 다른 기사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3단은 “승단은 의미가 없다”며 지난해부터 승단 대회에 일체 참가하지 않고 있다. 한 신예기사는 “6, 7단이면 몰라도 9단까지 올려주면 승단 대회에 참가해 점수를 따고 있는 기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3단이 ‘9단 승단’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이 3단은 “지금과 같은 승단제도와 기전의 1, 2차 예선이 있는 상황에서는 9단 승단이 오히려 더 나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9단이 되면 저단의 기사들이 참가하는 1차 예선에 나갈 수 없어 신예들끼리 따끈따근한 승부를 펼칠 수도 없고 애착이 큰 신예 기전에도 참가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즉 입신(9단의 별칭)이 돼 선계(仙界)에서 유유자적하기 보다 인간계(人間界)에서 부대끼면서 살고 싶다는 얘기다.
최근 그는 사석에서 승단과 관련해 심경을 우회적으로 밝힌 바 있다.
“나는 지금까지 선배들을 이겨왔다. 완전히 넘지 못한 벽(이창호 9단)이 있지만 언젠가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무서운 건 후배다. 나를 추월하는 후배 기사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나는 매일 후배들과 싸워야 한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