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순응의 미술과 시장⑧]안목 있으면 명품 싸게 살수도

입력 | 2002-08-11 19:20:00

서울옥션대표·경매사


우리나라의 예술품 경매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고미술품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법인으로 설립된 ‘경성 미술구락부’가 그 시초다.

매년 10여 차례 열리는 경매는 거래 금액도 엄청났고(한 회에 현재 화폐 단위로 수십 억원에서 수백 억원에 상당) 항상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니 경매의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보물 ‘청화백자 진사철채 양각 국화문 병’에 얽힌 얘기를 하고자 한다. 이 병은 조선 백자 기술의 총화로 청화에다 진사, 철사가 고루 있고 국화무늬도 양각 부조가 된 명품이다.

1940년쯤이라 한다. 음력 설날 어느 남루한 차림의 사내가 이 병을 포함한 골동품 4점을 갖고 을지로 3가에 있는 일본인 골동품상 무라노(村野)의 가게 문을 두드렸다.

주인은 4원을 주고 4점을 모두 사 주었다. 며칠 후 안목이 좀 나은 다른 일인 골동품상 마에다(前田)가 4점의 골동품을 60원에 사갔다. 며칠만에 15배를 받고 판 무라노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에다가 네 개의 물건 중 그 문제의 병만 800원을 받고 당시 조선은행 총재인 마쓰오카(松岡)에게 전매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라노 부부는 엄청 다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가 얘기의 끝이 아니다. 얼마 후 마쓰오카는 그 병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 올렸다. 이 물건은 치열한 경쟁 끝에 경매장의 한숨과 탄성, 박수 속에 1만8450원에 간송에게 낙찰되었다.

당시 그 돈이면 경성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사고도 남을 액수라 장안을 들끓게 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일본까지 퍼져 간송이 이 병을 너무 비싸게 사서 곧 망할 거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그러나 이런 풍문은 일본인들이 간송을 시샘해서 나온 것. 얼마 후에 어떤 일본인이 간송에게 그 물건을 10만원에 팔라고 애걸했으나 간송은 딱 잘라 거절했다.

서울옥션에서는 불과 몇 달전에 외국인이 위탁한 김환기의 작품 산월(30호)을 8200만원에 낙찰시킨 바 있다. 그 외국인은 이 작품을 1년 전 미국의 어느 시골 경매장에서 단돈 50달러(약 6만원)에 샀다.

요즘도 해외에서는 벼룩시장이나 시골의 경매장에서 소중한 우리 예술품을 조우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미술품의 주인은 열정(passion)과 안목(eye)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이 미술시장이고 경매다.

soonung@seoulauc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