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좀 나갔다 와야겠다. 한 시간 쯤이면 돌아올 거다”
“그래예…다녀오이소”
용하는 빛이 넘치는 거리고 나갔다. 봄바람에 벚꽃잎이 유리문에 들러붙었다가 떨어지고 또 들러붙는다. 슬슬 부선 아줌마한테 가게를 좀 봐달라고 하고 시장을 보러 가야 할 텐데, 왠지 허리가 절구처럼 무겁다. 희향은 방금 전까지 용하가 앉아 있던 둥그런 의자에 앉아, 바늘이 꽂혀 있는 학생모를 손에 들었다. 그 사람은 아들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바느질을 했을까,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면서 한 땀 두 땀 세 땀.
“우근이라” 희양은 아들의 이름을 읊조려 보았다. 듣기에는 좋은데, 불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캄캄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무수한 하얀 뿌리가 되어 캄캄한 땅 속으로 뻗어 내린다, 희향은 부르르 몸을 떨고 하복부에 손을 얹었다. 그만 아직도 아기가 들어 있는 줄 알고 배를 감싸안는다. 물렁물렁하다. 아기만 낳다 보니 짓눌린 고무공처럼 늘어져버렸다. 우근에게는 우철이 외에도 형이 둘이나 있었다. 지금은 없다, 하지만,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배에 잉태되어, 이 사타구니로 낳아, 이 팔로 안고, 이 젖을 먹였으니까.
우선이 젖을 빨고 소리내어 울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루뿐이었다, 나머지 이틀은 소리도 없이 잠만 자다가, 잠자면서 숨을 거뒀다. 새하얀 배냇저고리가 수의가 되고 말았다.
수용은 잘 웃는 아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고, 그 사람이 무등을 태워줘도 웃고, 우철이 간질어도 웃고, 오줌을 싸고서도 웃었다. 아가 신을 신고 웃으면서 달려오는 수용-. 옴마, 맘마, 넨네, 치. 옴마, 업빠! 옴마, 업빠! 옴모, 안뇨. 멍멍, 착하지. 와. 봐! 토토, 많다! 옴마, 봐! 한 살하고 육 개월이었다. 4월 14일, 내일이 수용의 기일이다.
수용. 우선. 둘의 이름은 내 몸에 새겨져 있다. 수용. 우선. 그 사람의 몸에는 아무 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뭐를 잃든, 뭐가 잘못되든, 그 사람에게는 늘 아무 상처도 없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다, 그런 짓을….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