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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9·11때 위기일발

입력 | 2002-08-14 10:12:00


지난해 미국의 9·11테러참사 당일 대한항공(KAL) 여객기가 실수로 공중납치 당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긴급 발진한 미 공군기에 의해 격추당할 뻔 했다고 USA투데이가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서울발 뉴욕행 KAL 85기는 당시 한국과의 텍스트 교신 도중 '공중납치'를 뜻하는 영문 약자 'HJK'를 사용했으며 이를 수상히 여긴 미 관제탑의 암호질문에 역시 실수로 공중납치 당했다는 답신을 보냈다는 것. 이 때문에 미 공군 F-15기 2대가 긴급 발진, 승객과 승무원 215명이 탄 이 비행기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이 비행기가 알래스카의 인구밀집 지역에 진입하기 전에 저지할 움직임을 보였다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미 공군이 KAL기를 격추하기 위해 상부에 승인을 요청했는 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 현장 교전수칙에 따르면 민간 여객기 격추 명령 권한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딕 체니 부통령만이 갖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이 권한을 노튼 슈워츠 북미방공사령관 등 몇명의 지휘관에게 위임했다.

슈워츠 사령관은 이와 관련, 비행기가 알래스카의 목표물을 공격하기 전에 공중에서 격추하라는 명령을 내릴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9·11당시 미 전역에 발생한 긴장과 의심으로 오해가 빚어지고 이로 인해 민간 비행기 격추 등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건은 항공사들이 비행기와 텍스트 교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민간회사인 ARINC가 9·11 테러 직후 공중납치 당한 비행기가 또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비행기들의 텍스트 교신들을 검토하면서 시작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급유를 위해 알래스카로 향하고 있던 KAL 85기는 오전 11시08분 본사로 보낸 텍스트 메시지에서 미국 테러 발생과 관련, 'HJK'라는 약어를 사용했으며 ARINC는 이를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로 잘못 해석하고 정오 직후 미국 연방항공국(FAA)에 통보했다.

FAA는 이를 앵커리지의 관제탑과 북미방공사령부(NORAD)에 전달했으며 NORAD는 엘먼도프 공군기지에서 전투기를 발진시켰다.

또 알래스카 주지사는 앵커리지의 대형 호텔과 연방건물들에 들어있는 사람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고, 미국 해안경비대는 알래스카 발데스 근처에서 기름을 싣고 있던 유조선들에게 근해로 나갈 것을 명령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앵커리지 관제탑은 이 비행기에 암호를 사용해 공중납치 당했는 지를 질문했으나 조종사들은 관제탑을 안심시키는 답변 대신 공중납치당했다는 암호인 '7500'으로 답신을 보내 문제가 발생했다.

비행기는 관제탑의 지시로 캐나다 유콘주(州)의 주도(州都)인 화이트호스에 오후 2시54분에 안착했으며 당국이 조종사를 연행해 신문한 뒤에야 이 비행기가 공중납치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