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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보내며]박성룡/처서기

입력 | 2002-08-15 17:35:00

김상유, 달밤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천지를 울리던 우뢰소리들도 이젠

마치 우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걷히듯

먼 산맥의 등성이를 넘어가나보다.

역시 나는 자정을 넘어

이 새벽의 나른한 시간까지는

고단한 꿈길을 참고 견뎌야만

처음으로 가을이 이 땅을 찾아오는

벌레 설레이는 소리라도 듣게 되나보다.

어떤 것은 명주실같이 빛나는 시름을,

어떤 것은 재깍재깍 녹슨 가윗소리로,

어떤 것은 또 엷은 거미줄에라도 걸려

파닥거리는 시늉으로

들리게 마련이지만,

그것들은 벌써 어떤 곳에서는 깊은 우물을 이루기도 하고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개울물소리를

이루기도 했다.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나는 아직 깨어 있다가

저 우뢰소리가 산맥을 넘고, 설레이는 벌레소리가

강으로라도, 바다로라도, 다 흐르고 말면

그 맑은 아침에 비로소 잠이 들겠다.

세상이 유리잔같이 맑은

그 가을의 아침에 비로소

나는 잠이 들겠다.

▼고형렬 시인이 최영철 시인에게▼

시인은 가슴으로 쓴다. 오랜만에 술이 취했고,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한 건축사가 주고 간 그 말을 잊지 않으렵니다. 처서의 가슴이, 벌레울음이 저 아침 풀밭에 있군요. 작고한 박성룡 시인의 ‘처서기’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참, ‘시평’지에 보내주신 시 ‘소녀별 둘’ 잘 받았습니다.

고형렬시인


최영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