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기자
여러분은 ‘피너츠’,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땅콩? 만화 피너츠(Peanuts)?
다음주에 개봉할 영화 ‘피너츠 송’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유쾌한 가족용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 나오는 만화 ‘피너츠’가 떠올라서요.
이 영화의 진짜 제목은 ‘the Sweetest Thing(가장 달콤한 것)’인데요, 카메론 디아즈가 주연한 ‘18세 이상 관람가’인 섹스 코미디죠.
원제와 다른 한글 제목의 외화가 부지기수이긴 하지만, ‘피너츠 송’은 워낙 엉뚱해서 궁금했습니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이 영화에는 카메론 디아즈와 친구들이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노래가 바로 문제의 ‘피너츠 송’입니다. 여기서 ‘피너츠’는 ‘삐리릭∼’을 뜻하죠. (남성 성기를 뜻하는 영어단어 ‘페ⅩⅩ’). 말하자면 이 노래는 일종의 ‘성기 찬가’입니다.
영화사측에 물어보니 ‘섹스 코미디’라는 장르를 강조하기 위해 원래는 한국 제목을 음, 저, 어, 그, ‘삐리릭∼송’으로 하고 싶었지만, 심의에 걸릴 것 같아 발음이 비슷한 ‘피너츠’로 했다네요.(눈가리고 아웅?) 마케팅 담당자는 ‘삐리릭∼’과 발음이 비슷한데다, 만화를 연상케 해 경쾌한 느낌도 주기 때문에 이 제목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홍보자료에 따르면 ‘피너츠 송’은 “가사를 번역할 수 없을 정도로 화끈하면서도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노래라네요. 개인적으로는 노골적인 것은 맞지만, 그리 웃기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문제의 이 노래는 정작 미국에서는 삭제된 채 개봉됐다는군요. 영화사인 콜롬비아 트라이스타측이 ‘섹스 코미디’보다는 ‘로맨틱 코미디’가 잘 먹힐 것 같아 노골적인 가사와 몸짓이 나오는 이 장면을 뺐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로맨틱 코미디’보다 ‘섹스 코미디’가 잘 될 것 같아 제목을 바꾸고 미국에서 삭제된 부분도 넣어 개봉한다네요. 그래서 상영시간도 ‘피너츠 송’은 88분, ‘가장 달콤한 것’은 84분으로 한국 버전이 미국 버전보다 길죠.
음. 지금까지 저는 할리우드의 섹스 코미디 영화에 대한 평에서 종종 ‘섹스 문화의 차이탓에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쓴 적이 있는데요, 앞으로 절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으렵니다. -.-;
그나저나, 도대체 언제부터 ‘섹스 문화’에 대한 한국 관객의 정서가 ‘미국보다 더 미국적’으로 된 걸까요?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