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외경제협력의 사각지대인 유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고 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이 상대방에게 너무 안 알려져 있으나 양측이 밀접하게 연계될 경우 시너지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최근 독일과 네덜란드의 기업 및 연구소, 지원기관들을 둘러보고 얻은 결론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유럽시장의 매력은 규모가 미국에 버금가면서도 정서에 아시아적인 면이 많아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분야는 기술력 있는 한국 기업들에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시장의 특성은 실용성과 다양성이다. 이 때문에 중소벤처기업들에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전문가 및 유럽인들이 제안하는 방식은 이미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 감독이 보여주었듯이 전략은 유럽이, 전술은 기술력을 가진 한국기업이 맡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로드맵을 만들고 이에 해당하는 부품이나 모듈은 한국에서 만든 뒤 마케팅이나 홍보 등을 다시 유럽이 맡는 식이다.
좋은 사례의 하나가 반도체 제조기술의 원천 특허를 가진 대덕밸리의 지니텍과 네덜란드 ASM의 전략적 제휴다. 지니텍은 세계시장의 두꺼운 벽을 ASM의 제조 및 마케팅망을 통해 뚫고 ASM은 어려운 기술을 본인들이 개발하기보다는 아웃소싱을 통해 윈-윈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업규모 면에서 종업원 30명과 7000명이라는 다윗과 골리앗의 악수라고나 할 두 회사 의 제휴는 차세대반도체인 300㎜ 웨이퍼 시장에서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MP3 기술도 좋은 사례다. 음악파일 압축 및 전송에 이용되는 이 기술은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소에서 개발됐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한국에서 개발돼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국제적 기술이전기관인 슈타인바이츠재단과 국제경제협력기관인 GWZ, 세계적 응용과학 연구소인 프라운호퍼인스티튜트, 신흥 바이오연구센터인 하이델베르크테크노파크 등은 하나같이 한국의 대덕밸리가 가진 인프라와 기술력에 관심을 표했다. 상호 협조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독일 및 유럽시장에 진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슈타인바이츠재단에서는 시장조사 등을 값싼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벤츠와 보슈 등 세계적 기업들이 자리잡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볼프강 뮐러 쾨블 국제경제협력국장은 “실질적 교류 방안을 찾아보자”고 적극적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느낀 것은 서로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벤처기업이나 유관기관은 영문으로 된 자료를 정기적으로 배포하며 국제적 네트워크에서 한 축이 돼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유럽시장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고 기업들이 진출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만들 필요가 있다. 동시에 주한유럽 국가 대사관이나 경제단체들도 서울 중심의 활동에서 탈피해 기술력을 가진 지방중소기업들을 찾고 이들에게 유럽을 알리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석봉 대덕밸리 벤처연합회 이사·‘대덕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