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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죽염=건강식품' 다이옥신 논란이후 소비자 불안

입력 | 2002-08-18 17:40:00

몸에 좋다고 매일 죽염을 몇 숟가락씩 먹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의사들은 죽염도 소금이므로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고 말한다.김동주기자 zoo@donga.com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최근 죽염(竹鹽)에서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발표한 이후 소비자들은 불안에 휩싸였고 관련 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의학자와 영양학자들은 또다른 관점에서 죽염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 즉 ‘죽염은 일반 소금에 비해 훌륭한 건강식품’이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일반 소금과 별로 다르지 않는 죽염을 과다복용해서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죽염 생산업체들은 이들의 주장을 ‘편협한 서양의학의 시각’으로 일축하고 있다.

과연, 죽염은 신약(神藥)인가, 아니면 소금의 일종일 따름인가?

▽죽염이란?〓천일염(天日鹽)을 대나무통 속에 넣어 황토로 봉한 다음 쇠가마에서 섭씨 800도로 여덟 번, 마지막으로 1300도에서 구운 소금을 말한다.

죽염 연구가인 김영희 인산생명과학연구소장은 “민간요법에도 소금을 구워 먹는 것이 있지만 현재 죽염 제조법은 민속의학자인 고 김일훈 옹이 동양의학의 원리에 따라 체계화했고 86년 저서 ‘신약’을 통해 대중에 소개했다”고 설명한다.

▽죽염은 일반 소금과 다른가?〓죽염 옹호론자들은 죽염이 태양으로부터 직접 온 신비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천일염을 가공했기 때문에 나트륨과 염소를 화학반응시켜 만든 소금과는 질적으로 다른 미네랄의 보고(寶庫)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의학자들은 “소금을 아홉 번 굽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며 소금이나 죽염이나 둘다 염화나트륨이 주성분”이라고 반박한다.

또 죽염 옹호론자들은 일반 소금은 바닷물 오염으로 산성을 띠는 반면, 죽염은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인체에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제대 의대 의사학과(醫史學科) 서홍관 교수는 “경이로운 것은 죽염이 아니라 인체의 항상(恒常)성”이라고 말한다.

항간에 ‘사람의 체질이 산성으로 변해 알칼리성 식품은 좋고 산성은 나쁘다’는 비과학적 얘기가 많이 돌고 있지만, 인체는 항상성에 의해 늘 중성을 유지하며 식품의 산도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 또 미네랄은 일상적 식사를 통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것으며 남으면 역시 인체의 항상성에 의해 자연히 배출된다는 것이다.

죽염 옹호론자는 죽염 결정의 형태와 크기가 소금과 다르며 세포간 이동이 쉽고 인체에서 전자기 저항을 덜 받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의학자들은 “죽염과 소금의 주성분인 염화나트륨은 인체에 흡수되면 나트륨과 염소로 분해돼 똑같이 기능한다”고 일축한다.

▽죽염은 안전한 신약(神藥)?〓 소금은 혈압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염 옹호론자들은 지난해 당시 계명대 생화학과 류호익 박사의 ‘14명에게 4주 동안 매일 죽염 15g씩을 복용케 했더니 혈압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간, 콩팥 등에도 아무런 독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을 앞세워 죽염은 일반 소금과 달리 혈압을 올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소금을 과다 섭취한다고 당장 혈압이 높아지지 않으며 혈압은 몇 년 동안 변한다”면서 “담배를 몇 달 피우게 한 뒤 폐암이 안 나타났다고 담배가 무해하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또 죽염 옹호론자들은 죽염이 고혈압, 암 등을 치유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킨다고 주장하지만 의학자들은 소금의 일종일 뿐이므로 오히려 과다 복용하면 각종 성인병과 암을 유발한다고 말하고 있다.

▽경험과 과학〓김영희 소장은 “서양 과학의 논리로는 다소 황당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죽염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위에서 죽염으로 각종 질환을 고친 사례는 많으며 80년대 이후 죽염을 광고한 적도 없는데 입소문으로 용하다는 것이 입증돼 널리 사용된 것을 서양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의학계에서는 “죽염으로 효과를 본 사례가 한번도 논문으로 발표된 적이 없는데도 사례를 내세우는 것은 사이비과학의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반박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죽염은 식품일 뿐이며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인정받은 적이 없다”면서 “죽염 제조회사가 죽염의 약효에 대해 홍보하면 식품위생법 상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죽염은 약이 아니라 식품, 과학이 아니라 경험이다.

식약청에서도 일반 소금 대신 양념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지만 질병 치료 효과에 대해 맹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죽염 옹호론자들이 과학적으로 죽염의 효과를 입증할 때까지는 과다 복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스스로 임상실험의 대상이기를 원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84년 국립연구원 쥐 실험 논문 "죽염과 천일염, 성분-약리효과 같아"▼

국내에서 정부가 죽염의 성분과 안전성, 약리효과 등을 분석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본보 취재팀의 확인 결과 1994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전신인 국립보건안전연구원의 약리부와 독성부에서 무려 33명의 연구원이 투입돼 죽염의 성분, 안전성, 약리효과 등을 분석했고 이듬해에는 같은 기관의 약리부 연구원 6명이 죽염이 중추신경계와 순환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당시 ‘국립보건안전연구원보’에 게재됐지만 일반에게 소개되지는 않았다.

본보 취재팀이 식약청 도서실에서 이 논문을 입수, 검토한 결과 죽염은 다른 소금과 성분, 약리 작용 등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4년 연구 결과 죽염의 주성분은 천일염과 마찬가지로 염화나트륨(NaL)으로 나타났다. 죽염은 천일염에 비해 철 규소 칼륨 인산염의 함량이 높았고 황산염의 함량은 낮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또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화학적으로 만든 NaL이나 천일염, 죽염 모두 고혈압 당뇨병 위궤양 암 등을 치료하는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가지를 쥐에게 2주 동안 투여한 다음 실시한 급성 독성 검사와 3개월 동안 투여한 다음 실시한 준장기 독성 검사 결과는 모두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쥐를 대상으로 중추신경계와 순환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모든 소금에서 행동의 변화, 수면의 변화, 진통 작용, 체온 변화, 혈압 및 심박수의 변화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금 섭취량 두고도 의견 갈려▼

죽염 옹호론자들은 건강을 잃는 것은 염성(鹽性)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죽염뿐만 아니라 양질의 소금을 많이 먹을수록 몸에 좋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소금을 많이 먹으면 혈관 내의 노폐물이 제거돼 고혈압이 근본적으로 치료된다고 말한다. 또 모든 동물은 체내 염분이 높을수록 오래 살며 특히 바다 물고기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학자들은 이를 ‘무지하고 무책임한 소리’라고 일축한다.

소금은 인체에서 나트륨과 염소로 분해되며 소금을 많이 먹는다고 결코 몸속이 소독되지는 않는다는 것. 또 모든 동물의 근원은 바다이기 때문에 체내 염분 농도가 엇비슷하며 바다물고기도 암에 걸린다는 설명이다.

과학적으로 소금은 몸속에서 분해돼 산과 알칼리의 평형을 유지하는 필수물질이며 이것이 결핍되면 식욕 감퇴, 무력감, 권태감, 피로, 정신불안 등이 생긴다.

그러나 소금을 부족하게 섭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오랫동안 지나치게 많이 섭취해 고혈압과 위암을 일으키는 게 문제다. 고혈압은 뇌중풍 심장병 등의 원인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위암은 맵게 먹는 것보다 짜게 먹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를 섭취하는 게 적정량일까?

서양의학에서도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민족이나 유전자에 따라 적정 소금 섭취량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10g, 대한영양학회는 하루 9g 이하로 소금을 섭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정도는 평소 식사량에도 충분히 담겨 있다. 참고로 김치찌개 1인분에 4.3g, 자장면 한 그릇에 2.5g, 라면 한 개에 3.1g 정도의 소금이 있다.

따라서 평소 외식을 줄이고 젓갈류, 소금에 절인 생선, 인스턴트 음식 등을 덜 먹어 소금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

한편 땀을 많이 흘릴 때 소금을 먹는 것이 좋다는 사람이 있지만 이 경우 혈액에서 수분이 모자란 상태이기 때문에 소금을 먹으면 오히려 피의 농도가 짙어져서 순환기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