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선씨는 “게임판도 영화판처럼, 수준높은 제작진이 있고 이를 알아보는 눈 높은 관객(게이머)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나성엽기자 cpu@donga.com
네띠앙 전 대표이사 홍윤선씨(40)가 최근 출간한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굿인포메이션). 포르노 정보격차 등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을 조명한 이 책에서 그는 온라인 게임의 ‘중독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사용자들은 ‘재미있어서’, ‘자꾸 손이 가서’ 무심코 게임에 접속하지만 ‘업자’들은 매우 간단한 ‘중독 장치’로 게이머를 쥐고 흔든다고 그는 분석한다.
집중 분석 대상으로 삼은 온라인 게임은 최고 인기 장르인 롤플레잉게임(RPG). 그는 사람들이 RPG에 중독되는 기본적인 이유는 △게임의 영속성(永續性) △계급경쟁 △성취욕 추구 등의 요소가 적절히 배합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RPG의 원조〓RPG는 원조는 7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끈 보드게임 ‘던전 & 드래건’(Dungeons & Dragons). 4, 5명이 모여 앉아 각자 역할을 정하고 다른 게이머와 협력해 목표를 달성한다. 게임을 하는 동안 능력치와 경험치가 올라가며 정해진 시나리오 안에서 대화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템을 확보하며 목표를 달성하면 게임이 끝난다.
▽게임의 영속성〓온라인 RPG도 구성요소에 역할, 경험치와 능력치(레벨·계급), 시나리오 ,대화, 아이템 등이 있다는 면에서 기본 구조가 보드 RPG와 같다. 그러나 시간 장소에 관계없이 24시간 게임이 진행되는 게 차이점. 굳이 사람을 모으지 않더라고 언제든 ‘접속’만 하면 수 백만 명이 기다리고 있다.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금단현상을 느낄 시간이 없다.
▽계급경쟁〓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레벨(계급)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게임을 ‘쉬면’ 나만 손해라는 의식을 심어준다. 반대로 투자하는 시간이 길수록 게이머는 그만큼 실력을 키우고 아이템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보드 RPG의 ‘대화’요소인 채팅을 통해 서로 대화를 하며 경쟁의식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개발자들은 잊지 않는다.
▽성취욕 추구〓보드 RPG와 달리 온라인 RPG는 회사가 망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게이머의 분신인 캐릭터가 몬스터와 결투에서 죽거나 다른 게이머에게 죽음(PK·Player Killing)을 당해야만 비로소 ‘나의’ 게임이 끝나고,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최고수가 되더라고 게임은 계속된다. 죽은 뒤에는 처음 레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성취감’을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게임에 다시 매달리게 돼 있다.
홍씨는 “많은 게임업체들이 중독 메커니즘에 지나치게 기대는 나머지 게임의 작품성을 소흘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게임 개발자의 ‘예술가적 기질’과 게이머들의 ‘안목’을 강조했다. 좋은 영화에 관객이 많이 몰리듯, 작품성 높은 게임을 게이머들이 많이 찾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것.
그는 “단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중독성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지만 중독성만을 위해 질 낮은 콘텐츠를 만들면 규제가 들어온다. 이 경우 콘텐츠가 재미가 사라지고 사용자도 곧장 떠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개발자에게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게임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게이머들도 레벨이나 아이템에 연연하지 말고 중독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게임 업체에 수준 높은 게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네띠앙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그는 올해 말 법인 등록 예정으로 창업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업종에 뛰어들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관련 사업이며 구체적인 사업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