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경제부 차장
지난주 이 난에서 다룬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가격 문제’에 독자들이 의외로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독자들을 이 이슈에 다시 한번 초대한다.
1. 에피소드 하나
필자가 경제기자 초년병이었던,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뛰던 시절의 일이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부동산문제를 담당하던 임상규 과장(현 기획예산처 예산실장)과 대화하던 중 ‘투기꾼 망국론’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임 과장의 반응은 예상밖이었다.
“허 기자, 투기꾼들만 욕하면 안 됩니다. 일반 시민들이 이익을 좇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국민에게 이익을 보여 줘도 종교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경제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도성장 압축성장도 불가능합니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익을 따라가는 국민’이 아니라, ‘부동산을 사두면 이익을 보게 만들어진 경제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정부 당국과 경제시스템의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필자는 마치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2. 투기가 뭘까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값 앙등의 원인을 재벌이나 복부인의 투기, 악덕 부동산업자의 농간에서 찾는다. 그래서 투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투기란 가격상승 기대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라고 본다. 심지어 투기로 인한 잦은 거래는 가격균형 상태에 빨리 이르게 해 투명하고 안정된 시장을 만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때로는 투기심리 자체가 가격을 견인하기도 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구근(球根) 투기나 20세기 초반 미국에서의 라디오주식 투기, 외환위기 직후의 닷컴주 투기처럼. 그러나 실질적인 바탕 없이 심리적 요인만으로 생긴 거품은 곧 꺼진다.
그런데 강남은 어떤가? 만약 거품이 꺼지지 않고 오래간다면, 또 거품의 양이 계속 커지기만 한다면…. 이는 거품이 아니라는 뜻이다.
3. 투기가 싫으면
그렇다고 강남 지역의 투기현상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치솟는 아파트값과 투기꾼의 불로소득은 국민의 박탈감 위화감을 자극한다. 이는 사회공동체 존립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인화성(引火性) 높은 문제이다. 경제논리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정치 사회적 문제라는 뜻이다. 정부가 최근 강남 아파트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정부가 마련한 것은 ‘수급을 조절하는 가격대책’이 아니라 투기꾼을 겨냥한 ‘투기 방해 대책’이었지만, 적어도 부동산에서는 이런 대책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투기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 강남 아파트값 문제의 본질은 수요량과 공급량이며 균형가격의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만약 정부가 투기 잡기에만 만족한다면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잠시 덮어 감추고 뒤로 미루는 행위일 뿐이다.
허승호 경제부 차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