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제기자 kjk5873@donga.com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암은 나를 떠났거나 아마도 활동시기를 찾지 못해 내 안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도….”
길은정(41)은 10년만에 낸 음반 ‘길은정 노래 시집-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 딸린 작은 책자에 이렇게 썼다. 96년 대장암 진단과 수술,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그는 “지금도 수면제를 먹지 못하면 단 1분도 잠들지 못한다”(올해 5월20일 일기)고 말했다.
음반 작업은 그에게 삶의 이유가 됐다. 구성 아이디어와 재킷 디자인과 편집 등 모두 혼자 구상했다.
“내일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어쩌면 내게는 찾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해요.”
음반은 두장의 CD로 길은정의 노래와 시 낭송을 하나씩 엇갈려 실었다. 수록된 노래는 그의 84년 데뷔곡인 ‘소중한 사람’을 비롯해 ‘그리움을 말하기까지’ 등 18곡이고 낭송 시는 ‘사디의 장미’ 등 15편이다.
음반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미소도 있다. 이 음반만으로도 길은정의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는 수술뒤 ‘여성’을 상실했다.
장기의 일부를 도려내고 인공 항문을 달자, 삶의 질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수없는 밤을 꼬박 새우게 한 통증들. 뭔가 만드는 것만이 삶을 지탱케 했다.
그는 암투병기도 냈고 올해에는 팬클럽 ‘소중한 사람들’이 선물해준 홈페이지에 매일 일기를 쓰며 세상과 소통한다. 하루라도 빠지면 ‘쓰러진 것 아니냐’고 연락이 올 정도다.
“2년전부터 미사리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해왔어요. 라이브 공연도 곧 할 겁니다.”
‘뽀뽀뽀’의 뽀미언니나 MC로 기억하던 팬들은 길은정의 기타 솜씨를 놀라워했다. 그는 열 살때부터 기타를 쳤고 가수로 데뷔한 것도 그 덕분.
삶의 벼랑 끝에 서 있었던 그는 “수술 뒤 암세포를 잊고 사니 (암세포가)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며 ‘뽀미 언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 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