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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화제]현희, 한국펜싱사상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

입력 | 2002-08-19 18:00:00

19일 열린 세계펜싱선수권대회 여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현희(오른쪽)가 임케 뒤플리처(독일)를 15-11로 꺾고 금메달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리스본AFP연합


믿기 힘든 우승이었다.

오죽하면 같은 펜싱선수인 남편조차 새벽잠을 깨뜨린 아내의 “1등 먹었다”는 전화에 “농담하지 말라”고 첫마디를 던졌을까.

당초 8강에만 들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던 현희는 예선을 거친 뒤 본선 64강전에서 세계 랭킹 37위 실비아 리날디(이탈리아)를 15-11로 누르며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 세계 7위 일지코 민차(헝가리)와 세계 50위 셴웨이웨이(중국)를 잇달아 1점차로 힘겹게 제치며 준준결승 진출.

1차 목표를 통과한 그녀 앞에 최대 강적이 나타났다. 세계 1위 로라 플레셀(프랑스)과 4강행을 다투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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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셀이 누구인가.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고 세계대회에서 3차례나 우승한 이 종목 최고수. 경력으로 따지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현희는 스피드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기습 공격으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15-11로 승리,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 세계 1위를 쓰러뜨렸으니 누가 무서웠을까. 4강전에서 세계 3위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을 15-14로 제치더니 마침내 최후의 승자로 우뚝 섰다.

1m68의 현희는 국제 무대에서 에페 선수치고는 단신에 속한다. 1m80에 이르는 당당한 체구를 지닌 서구의 강호들과 비교하면 머리 하나는 더 작다. 시상식에서 다른 입상자들과 포즈를 취한 그녀는 마치 언니들과 나란히 선 듯 보였다. 게다가 에페 검은 다른 종목보다 강하고 무거워 다루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희는 타고난 순발력과 주무기인 ‘카르트(막고 찌르기)’, ‘콩트르 식스(감아서 찌르기)’를 앞세워 이런 핸디캡을 이겨 나갔다. 현희의 세계 제패는 기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1935년 국내에 도입된 펜싱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줄곧 음지에 묻혀 있었다. 60여년의 역사 속에서 현재 등록선수는 1100여명, 실업팀 3개가 고작이며 그나마 여자는 시청 군청 도청팀을 제외한 순수 실업팀이 전무한 실정. 김영호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역시 한국인 선수로는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반짝 인기’를 끌기는 했어도 펜싱은 곧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게다가 대한펜싱협회가 2001년 2월부터 1년 가까이 회장 없는 사고 단체로 전락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당초 이번 대회에도 8000만원에 이르는 경비 문제로 출전하지 않으려 했으나 5월 유용겸 회장이 새롭게 협회를 맡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원정을 떠날 수 있었다. 한편 현희와 함께 출전한 김희정(충남계룡출장소)은 32강에서, 김미정(광주서구청)은 64강에서 각각 탈락했고 이금남(광주서구청)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에페=펜싱은 공격부위와 칼 종류에 따라 에페 플뢰레 사브르 3종목으로 나뉜다.

현희가 금메달을 따낸 에페(epee)는 전신 어디나 찌를 수 있어 공격부위가 가장 넓다. 플뢰레는 얼굴을 제외한 앞가슴 어깨 등 상체를 찔렀을 때만 공격으로 인정되며 사브르는 허리뼈 이상을 자르거나 찌를 경우 포인트를 얻는다. 또 에페에는 무게 770g이하, 전장 110㎝ 이하의 검이 사용된다.

경기 도중 공격유효 부위를 찌르면 유효타를 나타내는 색등이 켜지며 백등은 무효타를 뜻한다. 두 선수가 동시에 찔러 양쪽 진영에서 모두 색등이 켜지면 주심의 판정에 따라 점수가 주어진다. 에페는 다른 종목과 달리 양 선수가 25분의 1초 사이에 동시에 공격을 성공시키면 양쪽 모두에게 점수를 주는 게 특색이다. 한번 공격을 성공하면 1점이 주어진다. 개인전 방식은 3분 3회전을 벌여 많은 점수를 얻거나 15점을 먼저 따내는 쪽이 승리한다. 중간 휴식시간은 1분이며 경기에 사용되는 지면의 폭은 1.6∼2m에 길이는 14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