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 골프 기사를 취재하면서 근 10년만에 예전 태평양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했던 김홍기를 만났다. 김홍기는 동국대 4번타자를 거쳐 91년 프로에 입단했지만 1군에선 거의 뛰지 못한 무명 선수. 하지만 입단 첫해 2군 홈런왕을 거쳐 92년에는 시범경기 홈런왕까지 차지했던 그의 기사를 몇번 다뤘던 기자로선 그와의 재회가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기자는 그를 직접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체격은 남산만 해도 앳된 얼굴을 간직했던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느덧 중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쉬운 말로 고생 좀 했죠. 94년 은퇴할 때만 해도 야구를 못해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김홍기는 한때 모 방송에서 2군선수의 애환을 다룬 1시간이 넘는 특집 기획물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공중파TV를 타는 행운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군 숙소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장면에서 자사(태평양) 세제가 아닌 타사 제품을 넣는 것이 방영돼 구단 고위층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이 때문에 은퇴가 앞당겨졌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벌어놓은 돈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골프채를 잡았습니다. 워낙 훈련을 열심히 해 체력 하나 만큼은 자신이 있었죠. 한 6개월 미친 듯이 치니까 70대로 들어오더라구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김홍기는 이듬해 PGA 프로를 목표로 여권 하나만 달랑 들고 홀홀단신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엔 한국인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고 나중엔 레슨을 하면서 학비를 댔다. 결국 투어 프로의 꿈은 접었지만 그는 미국에서 무려 7년을 보내며 유명한 데이비드 리드베터 스쿨과 김미현의 스승인 필 릿슨이 운영하는 아카데미를 졸업, 국내에선 몇 안되는 PGA 레슨 프로가 되기에 이르렀다.
“독기를 품었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야구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일찍 야구를 그만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실패한 야구선수가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우가 거의 없었던 현실에서 기자는 처음엔 그의 바뀐 외모에 놀랐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삶에 대한 열정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