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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반도를 내려다 보는가 上]각국 첩보위성 전쟁

입력 | 2002-08-19 18:37:00

김경민 교수


《정부는 6·29서해교전 때 침몰된 해군 고속정을 이번주에 인양한다. 서해교전은 위성을 통한 첩보 수집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케 했다. 서해교전 후 북한은 도발을 부인했지만 미국 정부가 “증거가 있다”고 하자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4강에 둘러싸여 있지만 위성 첩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금강산댐 함몰도 미 상업용 위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한반도 상공에는 도대체 어떤 위성들이 떠 있어서 우리를 손바닥 보듯 내려다보고 있는가. 한양대 김경민(金慶敏·국제정치) 교수와 함께 짚어 보았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지난달 일본의 다네가시마(種子島) 우주센터를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美15㎝물체까지 감시…서해교전도 포착▼

4월 금강산댐이 함몰돼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이코노스 위성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대재앙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런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위성을 통한 첩보획득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때 알지 못한다. 그저 미국의 입만 쳐다봐야 한다.

첩보위성은 고도 3만6000㎞의 정지궤도에 떠 있는 방송위성이나 통신위성과는 달리 가능한 한 지구 가까이에서 지상의 물체와 움직임을 탐지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지구를 14바퀴반 정도 돌 만큼 빠른 속도로 지구를 선회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첩보위성이 고도 300∼500㎞에서 지구의 강한 인력에 끌리지 않고 첩보를 수집하려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돌아야 한다. 500㎞의 상공인 경우 초속 약 8㎞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현재 운용하고 있는 첩보위성 중 광학위성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명 ‘켄난’으로 불리는 KH11이고 또 하나는 ‘이콘’으로 불리는 KH12다. 둘 다 지름 3m 이상의 망원렌즈를 탑재하고 있고 크기 15㎝ 이상의 지상물체를 관찰할 수 있는 놀라운 해상도(解像度)를 자랑하고 있다. 이들 위성은 300∼500㎞ 상공을 선회하며 지상의 남자와 여자를 식별해 낼 수 있고 자동차 번호판도 읽을 수 있다.

KH11은 기본적으로 가시광용(可視光用) 카메라를 탑재한 주간정찰용이고 KH12는 적외선탐지 기능을 강화한 주·야간 정찰용이다.

KH12는 1989년 8월에 1호기가 발사돼 KH11보다는 수명이 길고 궤도변환능력이 우수해 분쟁이 발발할 경우 즉각 그 지역 상공의 궤도로 이동해 정찰에 들어간다. 만일 보다 선명한 촬영이 필요할 경우 위성의 고도를 높였다 낮추었다 하며 탐색하기 때문에 비록 수명이 짧아지기는 하나 더욱 세밀한 정보 획득이 가능하다.

광학위성의 유일한 단점은 날씨가 나쁘면 선명한 영상을 얻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악천후와 관계없는 레이더위성도 필요하다. 레이더위성은 첨단 합성개구(合成開口) 레이더를 탑재한 ‘라크로스’위성인데 이 위성의 해상도는 1m 이상 크기의 물체를 날씨와 밤낮에 관계없이 잘 관찰할 수 있는 반면 선명도는 광학위성보다 떨어진다.

미국 첩보위성의 막강한 능력은 걸프전 당시 증명된 바 있다. 미국은 KH11과 KH12, 그리고 라크로스레이더위성 4∼5기를 투입해 이라크 상공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선회하며 정보를 수집, 다국적군의 인명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반도 상공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첩보위성 보유국들의 위성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은 금강산댐 함몰 탐지 외에도 작년 12월 일본 해상보안청의 포격을 받고 동중국해에 침몰한 괴선박(북한선박으로 추정)의 경우에서도 확인된다.

일본해상보안청은 어떻게 망망대해상의 한 점과 같은 소형 괴선박을 사전에 발견하고 추적할 수 있었을까.

일본소식통에 의하면 미 국방부가 대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인한 한반도 주변의 안보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찰위성을 집중적으로 투입했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이들 위성은 괴선박이 북한의 해주항을 출발해 중국의 상하이(上海) 앞바다를 지나서 일본해역에 접근하는 것을 포착하고 주일미군과 일본방위청에 즉각 연락했다는 것.

1987년 미국에서 발간된 아서 클라크의 ‘2061 오딧세이 스리(Odyssey Three)’라는 소설에서 “모두가 모두를 지켜볼 수 있을 경우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듯이 첩보위성은 전쟁을 사전에 억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99년 1월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국가안보문서연구실이 발간한 ‘키신저 대화록’에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 당시 미중(美中) 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켰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외교비화가 묘사돼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1년 7월 극비리에 중국(당시 중공)을 방문했는데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71년 12월 10일 황화(黃華) 유엔 주재 중국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 국경의 소련군 움직임에 대해 귀국이 우려하며 정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다. 우리는 부정기적이지만 위성사진으로 (소련군의) 동정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귀국이 요청하면 정보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

중소(中蘇)간 우수리강 국경분쟁 발발 때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앞뒤 분간도 못 한 채 소련군에 당했던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보여주는 미측의 위성사진 앞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첩보위성이 있는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군사와 외교전략에서 얼마나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 국제 정치학

▼국내 위성개발 현황▼

우리나라의 위성과 발사체 개발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우리는 2004년 자동차까지 식별할 수 있는 고해상도의 관측위성을 보유하고 2005년에는 우리 발사체로 인공위성을 처음 쏘아올릴 수 있게 된다.

현재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우리의 인공위성은 모두 7개. 한국과학기술원이 영국 서레이대의 기술을 전수해 제작한 극소형 실험위성 우리별 1호와 2호를 92년과 93년에 처음 쏘아올렸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99년에는 15m의 해상도를 가진 100㎏급 우리 고유의 소형 위성 모델인 우리별 3호를 독자적으로 제작해 성공적으로 지구 궤도에 진입시켰다.

또 한국통신은 미국의 기업에 제작을 의뢰한 대형 통신방송위성인 무궁화위성 1, 2, 3호로 고화질TV방송 등을 하고 있다.

본격적인 관측위성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미국 TRW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아리랑 1호이다. 이 위성은 99년 미국의 로켓에 실려 685㎞ 상공에 발사된 이후 매일 사진을 보내오고 있다. 이 위성의 흑백 카메라는 6.6m의 해상도를 갖고 있어 도로나 건물까지 식별할 수 있다. 무엇보다 큰 자산은 이 위성의 제작과정에 현대 삼성 등 국내 7개사가 참여해 70%를 국산화한 점이다.

그렇지만 아리랑1호는 사람까지 식별할 수 있는 15㎝의 놀라운 해상도를 가진 미국의 첩보위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항공우주연구원은 2004년 11월 흑백 1m, 컬러 4m의 해상도를 갖는 아리랑2호를 쏘아올릴 예정이다. 이 위성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자동차는 식별할 수 있어 개발에 성공할 경우 우리는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권의 고해상도 관측위성 보유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우주연구원은 2008년에는 수십㎝의 해상도를 갖는 아리랑3호를 발사한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지만, 이 정도면 거의 첩보위성이나 다름없어 국방부, 과기부 등 관련부처 간에 논의가 더 진행돼야 계획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2015년 세계 10위권 선진우주국 진입을 목표로 총 5조1570억원이 소요되는 국가적 차원의 ‘국가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해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모두 17기의 위성을 추가로 발사하게 되는데 이중 7기가 관측 목적의 위성이다.

첩보용으로도 쓸 수 있는 고해상도의 관측위성을 보유하려면 고해상도 카메라와 함께 발사체 기술의 확보가 관건이다.

정부는 99년 북한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광명성1호를 쏘아올리자 부랴부랴 계획을 마련해 2005년에 독자적으로 발사체를 개발해 위성을 쏘아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과학기술부는 남해안의 외나로도를 발사기지로 정했지만, 지역 주민과 토지 보상 문제가 풀리지 않아 7월로 예정됐던 기지 착공이 올 하반기로 연기된 상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