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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영국은 지금 '에든버러축제' 열풍

입력 | 2002-08-19 18:42:00

영국 에든버러 축제 프린지는 세계 문화 게릴라들의 경연장이다. 이곳 하이 스트리트에서는 황금빛 동상으로 분장한 채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1947년 시작된 에든버러 축제는 프랑스의 아비뇽, 독일의 잘츠부르크와 함께 3대 공연예술제로 꼽힌다. 연극(40%)을 중심으로 음악(21%) 코미디(20%) 무용(5%)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이 열리는 이 축제는 공식 초청작과 프린지로 나뉜다.

이 축제에서는 100여편이 공연되는 공식 초청작보다 프린지(Fringe·변방 혹은 주변부라는 의미) 부문이 더 많이 주목받는다. 해마다 세계 1000여개 팀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은 작품을 선보여 ‘공연 예술계 아웃사이더들의 경연장’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49개국 1490여팀이 참여한 프린지의 힘은 ‘자유로운 개성의 표출’에 있다. 공연장과 길거리, 선술집 등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프린지 공연들은 새로운 실험의 장이자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진출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

▽아웃사이더 예술인들의 경연장〓에든버러 시내는 복고와 현대가 공존한다. 7월31일∼8월26일 축제가 열리는 동안 수백년전의 모습을 간직한 중세 건물들 사이로 수많은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배우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 차림으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축제 기간 동안 500m에 이르는 에딘버러의 하이 스트리트는 오전 10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자동차 통행을 통제해 거리 전체가 공연장으로 바뀐다.

프린지 참가 팀들은 이곳 임시 가설무대에서 20분짜리 하이라이트 공연을 벌인다. 특히 무료로 진행되는 길거리 무대는 프린지 만의 볼거리. 두 명의 바이올린 주자가 즉흥 연주를 펼치고, 한 예술인은 록 음악에 맞춰 피아노 치듯 손으로 인형을 움직인다. 팽이를 공중으로 띄워 줄로 받는 묘기를 펼치거나 온 몸을 금색으로 칠해 동상이 움직이는 듯한 퍼포먼스도 벌어진다.

▽프린지의 파격 이색 공연들〓‘집에서 절대로 따라하지 말 것’, ‘주의! 남자들이 모두 벗고 나옴’.

올해 프린지에서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 중인 ‘Puppetry of The Penis’는 남자의 생식기를 활용한 행위 토크쇼로 가장 인기가 높다. 남자배우 두 명이 대형 멀티 스크린 앞에서 성에 관한 만담을 늘어놓으며 성기를 이용해 햄버거 캥거루 눈 뇌 등을 ‘창조’한다.

언뜻 ‘포르노쇼’ 같이 보이지만 이 작품은 “금기시 돼왔던 육체의 도발적인 발상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밖에 중력을 이용한 무용극 ‘Fallen’, 세익스피어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델로’, 사이먼 가필드의 포르노 고전을 라이브 쇼 형식으로 선보이는 ‘Deep Throat’ 등 각양각색의 공연들이 열리고 있다.

▽문화상품+경제상품〓고 부가가치 창출〓“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히트작은 프린지에서 나온다.”

프린지 사무국 마케팅 매니저인 마틴 레이놀즈는 “해마다 출품작 1000여편 중 5∼10편이 미국과 영국의 공연예술무대로 진출한다”며 “‘미스터 빈’을 비롯 ‘델라구아다’ ‘검부츠’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400여명의 공연 관계자들이 참신한 공연물을 캐스팅하기 위해 프린지를 찾은 상태. 이 곳의

프린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틴은 지난 55년동안 코미디 춤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가 고르게 출품됐고, 평균 8파운드(한화 약 1만6000원)라는 싼 가격에 수준 높은 공연들을 만날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프린지는 총예산 100만 파운드(약 180억원) 중 70%를 공연 입장료, 참가비, 홍보대행료로 충당하면서 자생력도 갖췄다. 또 지난해 여행객들이 공연 관람 및 숙식 쇼핑 등으로 쓴 돈이 4억2000만 파운드(약 8400억)에 이른다.

때문에 ‘프린지가 에든버러를 먹여살린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면서 히트작 우려먹기를 반복하는 국내 공연계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두드락' 현지반응…신선한 충격▼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한 한국의 ‘두드락’ 팀이 가위를 부딪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올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 참가한 비언어 비트 퍼포먼스 ‘두드락’은 현지에서 “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26일 게이트 웨이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두드락’에 대해 스코틀랜드 일간지 ‘스코츠맨’은 “동양적인 타악과 서양 음악을 접목한 열정적인 무대”라며 별 다섯 만점에 별 셋(평균 수준)을 주었다. 영국 BBC 방송에서도 2회에 걸쳐 ‘두드락’ 공연 장면을 방송했다. 외국 관객들의 반응도 호의적인 편. 총 400여석 중 평균 예매율이 60∼70%로 프린지 공연물 중 2% 이내에 포함되는 좋은 성적이다.

13일 오후 7시 게이트웨이 극장에서 열린 ‘두드락’ 공연에서는 300여명의 관객들이 드럼과 북을 이용한 현란한 연주, 엿장수 가위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신기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특히 드럼 연주 대결을 벌이는 ‘리듬 파이트’와 북 장고 등의 협연이 이어지는 피날레가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공연은 사물놀이 굿이 마임 탭댄스로 이어지고 극 중간에 ‘3 3 7 박수’를 유도하는 등 코믹한 요소도 가미됐다.

공연을 관람한 프랑스 한 여성 관객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재기발랄한 드럼 연주였다”며 “록 적이면서도 독특한 느낌이 신선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3년간 ‘두드락’의 전세계 배급 계약을 체결한 ‘유니버설 아트’의 예술감독 토멕 보르코비는 해외 진출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한국 고유의 전통 리듬에 이국적인 록 사운드를 가미한 부분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비주얼 뮤직(Visual Music)을 시도했다는 것.

“한국의 오래된 전통을 현대와 결합했다는 게 강점이다. 내후년 경 영국 캐나다 북미 지역 공연 때까지 약간의 수정 보완을 거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폴란드 출신의 토멕은 5년전부터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영화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오페라 갈락티카’의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두드락’을 제작한 최익환 대표는 “2.3t의 악기 조명을 공수하는 등 총 제작비 2억5000만원을 들였고 해외 진출을 위해 수정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내년에 2팀을 만들어 전용관 공연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든버러〓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