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이상권 글 윤정주 그림/107쪽 6500원 웅진닷컴(초등 3∼6학년)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생태동화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자폐아를 대하는 주변 아이들의 심리를 다룬 이야기다. 자폐증 증세가 있는 남자아이 ‘승준’, 그를 둘러싼 여자아이 ‘고재’와 남자아이 ‘힘찬’의 갈등은 아이들의 세계로만 제쳐두기에는 어른들에게도 보여주는 바가 참 크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 자폐증은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병이다. 자폐아들은 일반 아이들과 달리 자기만의 특이한 방법을 고집하며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승준이의 소통 방법은 ‘애벌레’다. 승준이의 돌아가신 할머니는 손자를 늘 ‘고추벌레’라고 불렀다. 승준이에게 애벌레는 할머니가 자신에게 준 사랑과 신뢰의 모습이다. 그래서 승준이는 애벌레라는 방법으로 세상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소통 방법이 다른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애벌레를 추하다고 하는 것은 낯선 것을 쉽게 악으로 규정해 버리는 어른들의 관념 때문 아닐까.) 승준이에게 잘해주려는 고재나, 고재가 승준이와 친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힘찬이와 반 아이들에게 애벌레는 혐오의 대상이다.
이 갈등은 고재의 생일날 터져버리고 만다. 생일 선물로 가져온 애벌레 한 마리. 승준이에게는 자기의 마음을 나누는 최고의 선물이건만 반 아이들에게는 밥을 못 먹고 뛰쳐나갈 만큼 혐오스러운 선물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소통의 문제가 승준이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당당함을 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고재나, 고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힘찬이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심한 소통 단절현상을 본다. 자폐아가 세상에 대해 한 코드로만 대화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일반인도 몇몇 코드에 대해 자폐를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다른 차원의 눈이 있다면, 인간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혹시 애벌레가 애벌레를 잡아먹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모습이 끔찍해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래도 어른의 개입 없이 아이들 스스로 작은 해결방법을 찾는 마무리가 든든하다.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고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남과 함께 사는 방법이란 걸 알아낸 힘찬이가 참 예쁘다. 아이들은 참 예쁘다.
김혜원 주부·서울 강남구 일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