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이동통신업체에 다니는 남녀 주인공이 사무실로 들어선다. 사무실 출입문과 주변에CTF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보인다. 보는 사람들은 KTF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Corea Team Fighting’이라는 슬로건이 월드컵 기간에 ‘Korea Team Fighting’ 캠페인을 진행했던 KTF를 더욱 부각시킨다.
장면2:출판사를 운영하는 남자 주인공이 BMW 승용차를 몰고 나온다. 카메라는 자동차를 전면 후면 측면 등 다양한 앵글로 잡는다.
장면3:남자 주인공이 경품으로 월드컵 티켓을 준다는 음료수를 쌓아 놓고 마신다. 음료수 상표는 가렸지만 병의 모양과 색깔로 보아 웅진식품의 ‘초록매실’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특정 상품을 등장시켜 광고 효과를 노리는 ‘PPL(product placement) 마케팅’이 각광을 받고 있다. 범람하는 TV CF에 식상해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흔히 ‘간접광고’ 또는 ‘끼워넣기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PPL 마케팅이 새로운 광고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극중 주인공이 ‘입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광고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제작사가 관객을 볼모로 돈벌이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PPL 마케팅의 원조, 영화〓미국 영화업계가 1940년대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개발한 PPL 마케팅은 1999년 개봉된 한국의 첫 블록버스터 ‘쉬리’를 계기로 대기업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쉬리’에는 포카리스웨트, LG칼텍스정유, 동서식품 등 30개가 넘는 PPL이 등장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북한 병사로 나오는 송강호가 “내 소원은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하며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동양제과 김무균 차장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월 50억원 정도였던 초코파이 매출이 5∼1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커플매니저와 고객의 사랑을 그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에는 결혼정보회사인 듀오가 등장한다. 듀오 간판이 나오고 듀오 회원들의 이벤트 장면도 소개된다. 듀오는 이 영화에 제작비 8000만원을 지원하고 일간지 등의 광고비를 부담했다.
TV에 드라마와 달리 간접광고 규제를 받지 않는 영화는 갈수록 노골적으로 PPL 제품을 띄워준다.
최근 개봉한 ‘라이터를 켜라’에서는 새마을호 열차 좌석의 시트와 한 배우의 상의에 ‘현대택배’라는 로고가 찍혀 있다. “예, 빠르고 신속한 현대택배…”라는 그의 대사를 듣는 순간 아무리 둔감한 관객이라도 PPL광고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국내 광고대행사 중 올해 초 처음으로 PPL 마케팅 전담팀을 만든 금강기획 임범 팀장은 “3개월 만에 25편의 영화를 확보해 PPL을 원하는 업체를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드라마에서 뮤직비디오까지〓최근 PPL 마케팅은 드라마, 뮤직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등 사람이 모여드는 모든 매체로 확산되는 추세.
가수 이현우의 뮤직비디오 ‘디 엔드’에는 현대자동차의 스포츠카 ‘투스카니’가 등장한다. 뮤직비디오의 주제도 카레이서에 관한 것이다. 현대차는 이 뮤직비디오 제작비 10억원을 지원했다.
LG텔레콤은 베이비복스 NRG 박진영 등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 제작비 일부를 대는 조건으로 자사 캐릭터 ‘홀맨’을 삽입했다. 온라인게임업체인 제이씨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부터 자사 게임 안에 버거킹, 베니건스 등의 광고를 해왔다.
이처럼 PPL 마케팅 시장이 급팽창하는 데 대해 PPL 마케팅 대행업체인 굿윌 커뮤니케이션즈 박용집 사장은 “TV광고의 경우 제작비와 매체비를 합쳐 5∼6개월간 20억원 비용이 들어가지만 드라마에 PPL로 삽입하면 수천만원에서 1억∼2억원 정도면 된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나 영화가 대박이라도 터지면 PPL업체도 덩달아 매출이 급성장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국내 PPL 대행업체들은 이제 미국 할리우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굿윌 커뮤니케이션즈는 6월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직원 2명을 파견해 5편의 영화를 섭외했으며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상대로 PPL 마케팅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상업성에 대한 논란〓대기업으로서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PPL이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무리하게 소비를 강요한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전파가 공공자산이라는 점에서 PPL을 간접광고로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 당국인 방송위원회의 처벌이 형식적으로 그치는데다 간접광고 규정이 느슨해 간접광고 행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은 “방송은 특정 상품이나 기업, 영업장소 또는 공연 등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광고효과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명이나 제품명을 살짝 가리거나 조금만 바꾸어도 간접광고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예컨대 ‘LG’를 ‘LC’로 바꾸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감시국 김태현 부장은 “TV드라마를 통한 간접광고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많다”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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