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 속담은 왜 우리사회에서는 원칙주의자보다 좋은 게 좋다는 사람이 출세할 확률이 높은지를 설명해준다. 정권을 바꿔가면서 양지에서만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자기 주장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즘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의 면면은 더 이상 이 속담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박근혜…. 배경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 권력에의 도전’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보스가 낙점하는 것이 관례였다. 보스는 개성이 없고 고분고분한 부하를 선택하고 싶어한다. 미국에서도 대통령후보가 선호하는 부통령후보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다.
▼기존 권력에 맞서야 인기▼
그러나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하게 되면서부터 소위 기존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이 뜨게 되었다. 누구와도 잘 지내는 사람은 좋은 관리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훌륭한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리더는 자신만의 뚜렷한 비전과 왜곡된 기존 권력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계획된 연출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추세의 원조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딛고 일어선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된다. 양김이 권위주의 정권과 싸우면서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 것은 물론 정치적 배경이 전혀 없었던 이회창 후보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맞서면서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이는 과거를 부정해야만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우리의 어두운 과거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증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우리 국민이 기존 정치권을 불신하면서도 어느 나라 국민보다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왜 이회창 후보는 자신의 인기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한 반면 노무현 후보나 박근혜 의원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정몽준 의원은 어떻게 하면 이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여론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는 것일까.
대중적 인기를 업고 새로이 등장한 지도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새 인물이 기존 권력에 도전함으로써 인기는 얻지만 현실정치에서 뭔가 도모하기 위해 기성 정치인과 손을 잡는 순간 그의 인기는 거품이 되고 만다. 노 후보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을 완전히 배제하면 일정한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여 고립되고 만다. 박 의원이 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후보의 경우는 상도동계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최형우 전 의원이 쓰러지는 바람에 타협해야 할 기존 권력의 존재가 별로 크지 않았다. 따라서 비교적 손쉽게 기득권 세력을 접수하면서도 YS, JP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인기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이미 이 후보가 기존 권력에 편입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 후보의 경우는 지역주의라는 기존 권력구조에 도전함으로써 인기는 얻었지만 동교동계가 여전히 당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기득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계였다. 정당은 개혁하지 못했으면서 국민경선으로 후보만 덜렁 뽑아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본인의 위치가 불안하니 경솔하게 재신임, 재경선 등의 카드를 빼 든 것도 스스로를 위기에 빠뜨린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원칙 비전 밝혀야▼
그러면 정 의원은 어떤 식으로 기존권력에 도전했느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정 의원이 월드컵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대한민국 축구 4강 신화의 주역으로서 공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축구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국민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정 의원의 도전정신과 업무추진능력에 점수를 준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 의원의 인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정 의원은 직접적으로 투쟁한 것은 아니지만 무소속을 고집함으로써 기성 정당 모두를 부정하는 데 성공했다. 틈틈이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것도 신선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많은 이의 관심은 정 의원이 국민적 지지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정 의원은 국민으로부터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은 셈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동지를 규합하는 것.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 의원이 자신의 원칙과 비전을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