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 축구선수를 알고 있다. 명색이 ‘기술감독’으로 있는 ‘동네축구’에서 8년째 인연을 맺었다. 중학생 때부터 그는 직업 선수의 꿈을 키웠다. 나도 성원했다. 그리고 그것을 절반쯤 이뤘다. 우승권을 넘보는 서울의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후 만났는데 뜻밖에도 진로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대학의 강호라지만 모두들 프로팀으로 직행하는 게 아니다. 연습생이라도 되면 다행. 만약 그 열차를 놓치면 곧장 치열한 경쟁사회에 내동댕이쳐지는 현실이다. 어떤 점에서는 차라리 그 쪽이 더 낫다고 한다. 간신히 연습생으로 입단했는데 거기서 이십대 청춘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장사를 하는 게 어떠냐고 그는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답해줄 수 없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모두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 아니냐고? 글쎄, 그 냉혹한 논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올스타전의 화려한 폭죽이 마음에 걸린다.
대표팀은 고사하고 올스타전에도 뛰지 못하는 수많은 무명 선수들은 TV를 보면서 시름을 달랠 것이다.
올스타전의 폭죽은 몇몇 스타들의 성취만으로 쏘아올린 것이 아니다. 그 폭죽은 생계가 막막한 선수들, 유니폼에 무슨 드링크제와 전자제품으로 제 이름을 대신하고 있는 무명의 선수들과 연습생들의 고통스러운 눈물이 배어 있는 것이다. 스타들은 선택의 여지가 많다.
유럽의 빅리그가 아니더라도 생계를 도모할 그라운드는 얼마든지 있다. 고액의 연봉과 광고 출연료, 여기에 출판 인세까지 더하면 하나의 생명체로 이 살벌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무명 선수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조차 유지하기도 벅찬 형편이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선수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위하여 좀더 구체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나는 권익 보호와 한국축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선수들이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로야구의 ‘선수협의회’를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스타 선수들이 구단 이익의 볼모가 되지 않고 무명 선수들이 협회와 연맹의 전횡과 무관심에 시들어가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구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 맨 앞에 스타들이 앞장서주기를 나는 촉구한다. 한국축구의 상징적인 선수들이 정녕 ‘4강 신화’에 빛나는 위대한 영향력으로 폭죽 아래에서 시들어가는 무명의 후배들을 위하여 진지한 활로를 모색해주기 바란다. ‘4강 신화’의 상징들이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그라운드의 냉혹한 논리, 살벌한 생존 경쟁의 현장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었던 스타들 아닌가. 선수들의 권익 옹호는 그들의 권리이자 삶의 자구책이다. 협회와 연맹도 한국축구의 저변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오히려 권장해야할 사항이다. 잔디구장 확충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다.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