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장애인 전자도서관 개관에 산파역을 한 한국장애인정보격차협의회 남혜운 사무총장 - 박경모기자
“간절히 바라는 걸 얻고자 하면 길이 열린다는 걸 깨달았죠.”
국내 최초의 장애인 전자도서관(www.opendigital.or.kr) 개관을 하루 앞둔 21일 한국장애인정보격차협의회 남혜운(南惠云·38) 사무총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1년 동안 매달려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 ‘장애인 전자도서관 개관’이라는 열매를 맺었기 때문.
이 전자도서관은 사이트를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적합하도록 설계했고 전자도서 1만권을 비롯해 200점의 영상물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남씨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에게 이 도서관은 지적 갈증을 해소해 줄 하나의 ‘우물’인 셈.
남씨가 선천성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은 86년 무렵. 서울대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남씨는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해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법전의 작은 글씨가 자꾸만 뿌옇게 보여 안과를 찾은 그는 서서히 시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통스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후 남씨는 법관의 꿈을 접고 대학 졸업 후 향수제조업, 정치광고사업, 입시학원 등 사업에 뛰어들어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을 잃게 되자 절망에 빠졌다.
이때 남씨에게 다가온 한 줄기 빛이 바로 컴퓨터. 96년 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남씨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체를 차렸다. 그는 컴퓨터 화면 위의 정보를 읽어주는 ‘소리눈 2000’, ‘굿아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2000년 12월 신지식인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남씨는 지난해 1월 설립된 한국장애인정보격차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의 정보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연구하는 한편 전자도서관 개관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다행히 한 기업이 전액을 지원해 도서관 개관은 가능해졌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도서관 개관은 시작일 뿐이지요. 많은 장애인들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살아 숨쉬는’ 도서관이 돼야 할 텐데 그렇게 될지 솔직히 긴장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전자도서 중 괜찮은 책을 골라 보는 수준을 넘어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볼 수 있도록 전자도서 수를 늘려야 하고 더 많은 영상물을 확보해야 한다.
콘텐츠 구입에 많은 비용이 들지만 열심히 운영하다 보면 방법이 생길 거라고 믿는다는 남씨는 “이 도서관이 장애인들의 편안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길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