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지섭이네 세가족 미국유학 안착기

입력 | 2002-08-22 16:08:00

여름방학을 맞아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를 찾은 이채연씨와 아들 송지섭 딸 지원 남매.


《미국의 여름 방학은 길었다. 엄마 이채연씨(37)는 석달 반, 송지섭(11) 지원(9) 남매는 두달 반을 늘어지게 놀았다.

이씨는 미국 중부 미주리주 워렌스버그의 센트럴 미주리 주립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는 늦깎이 대학생이다.

지섭 남매는 대학 근처의 공립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학생이다. 세 가족은 지난해 8월 남매의 효율적인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남매의 아버지 송치영씨(40)는 서울에서 기업체를 경영하며 소위 ‘기러기 아빠’ 생활에 들어갔다.

미국 생활 1년을 되돌아본 이씨는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오길 잘했다는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가 아이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면 어쩌나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1. 여보, 애들 데리고 미국 갈까?

이씨는 서울에 살 때 ‘과외 안 시키는 엄마’로 유명했다. 한창 뛰어 놀 나이의 아이들을 ‘잡는 것’이 싫었고 과외 효과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지섭이가 3학년에 올라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어설픈 영어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지만 고려대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한 이씨도 영어는 자신이 없었다.

지난해 3월 남편 송씨에게 얘기를 꺼냈다. 아이들만 사립 학교로 보낼 경우를 계산해보니 1인당 최소한 연간 3만달러(약 3600만원)가 필요했다. 안전하게, 싸게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엄마가 함께 유학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학 준비는 인터넷이 도왔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자녀의 교육 환경이 좋고 값이 싼 곳을 찾았다. 콜로라도와 버지니아주가 아이들 학교 보내기에 좋아 보였다. 하지만 엄마의 학비가 2만달러 인데다 가족용 기숙사(family housing)가 있는 대학이 없어 월세 1200달러가 추가로 필요했다.

차선으로 미주리주를 후보지로 선정, 대학을 물색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보냈다. 서류를 보낸 지 2개월이 지나 학교측에서 입학 허가서를 보내왔다.

이씨는 학교측에 아이들과 머물 기숙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28평 규모의 기숙사에는 TV 냉장고 에어컨 가스레인지 히터 등이 구비돼 있었다. 이외에 침대 3개, 식탁, 옷장 2개, 소파 등 가구를 월 20달러에 빌렸다. 이씨와 남매의 미국 유학비용은 연간 2만5000달러(약 3000만원). 초기에는 중고차를 7000달러에 구입하는 등 정착비용이 조금 더 들었다.

#2. 엄마, 우리 미국에 왜 왔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지섭이는 알파벳만 뗀 상태. 지원이는 소문자 a와 b도 구분하지 못했다. 20명 남짓 되는 반에는 동양계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원래 조용한 성격인 지섭이는 말할 것도 없고 명랑한 지원이도 갑자기 벙어리가 됐다. 다행히 체육 음악 미술 등 예체능 교과 비중이 높아 남매는 말을 못하면서도 학교 생활은 즐거워했다.

2학기가 돼서도 아이들은 말문을 열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집에 와서 얘기하고 TV에서 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절반 이상은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입은 열지 않았다. 한 학기를 기다린 교사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씨를 불렀다.

“지섭이가 말을 안 해요.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지원이가 교사의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아요. 우리는 이런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남매도 힘들어했다.

“선생님과 친구들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해.”(지원)

“교실에 앉아 있으면 살구가 사과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우리 미국에 왜 온 거야?”(지섭)

이씨는 서울서 가져간 지구본을 돌려보이며 이렇게 달랬다.

“한국은 작지만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야.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너희들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 온 거야. 그리고 아빠가 영어 못해서 사업하는 데 힘들어하는 거 알지?”

#3. 앗 개구리다!

미국 생활 8개월째 접어들 무렵 드디어 둘째 지원이의 말문이 터졌다. 기숙사 근처로 산책을 나갔는데 인도로 뛰어든 개구리를 보고 지원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앗 개구리다!” 하는 영어가 튀어나왔다. 지원이는 계속 개구리를 잡았던 얘기, 뱀이 개구리를 좋아한다는 얘기들을 신나게 영어로 떠들었다. 지원이는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임 교사도 반가워 이씨에게 전화를 했다.

“한번 말문을 열더니 이제는 쉴새없이 떠들어요.”

조용한 큰아이도 10개월을 넘기자 수다스러워졌다. 옆집에 사는 학부형이 “지섭이가 고양이에 대해 설명하는데 무척 많이 알고 있더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씨는 높은 허들을 하나 넘은 느낌이었다.

현재 남매의 영어 수준은 학교 숙제를 엄마 도움 없이 스스로 해갈 수 있을 정도다. 어려운 어휘가 많이 나오는 사회나 과학은 힘들어한다. 미국에서 생활한 기간은 같아도 지섭이보다는 지원이 영어가 더 유창하다. 지원이가 나이가 어린 데다가 사교적이어서 미국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기 때문인 것 같다.

“지원이는 어려서 소꿉장난 하고 흙장난 하고 노니까 또래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섭이 나이가 되면 연예인이나 스포츠 등 관심 분야가 생겨 이 분야를 꿰고 있어야 하는데 지섭이가 그렇지 못하니까 소외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씨가 1년간 미국생활을 통해 영어 교육에 대해 내린 잠정 결론은 첫째보다는 둘째아이가 수월하다는 것, 아는 만큼 들린다는 것, 그리고 한국어를 잘해야 영어도 잘한다는 사실이다. 이씨는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게 하고 한국어로 된 책을 많이 읽힌다.

#4. 얘들아, 엄마 전과목 A 받았어!

애초에 유학의 목적이 아이들 교육이었다. 이씨는 좀 여유있게 공부를 해보자는 계산에서 대학원 대신 학부 과정을 택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학부 과정이 훨씬 힘들었다. 대학원에서는 한 학기에 2, 3과목만 수강하면 되지만 대학에서는 5, 6과목을 들어야 했다. 과목당 리포트 제출이 4회, 시험이 4회. 아이들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할 수가 없어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줄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이씨는 방과 후 아이들 저녁을 해먹이고 밤 10시까지 숙제 봐주고 재운 후 새벽 2, 3시까지 공부에 매달렸다.

또 하나 예상이 빗나간 게 있었다. 공부가 의외로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책을 보니까 힘은 들지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10년 넘게 집에 있으면서 틈틈이 CNN이나 AFNK을 듣고 영어 소설책을 많이 읽어둔 게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교육 내용도 실용적이어서 배움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첫 학기에는 수학 음악 미국정부론 도서관학 영어회화 등 5개 과목을 들었다. 미국 정부론 강의는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미국 사회와 최근의 이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자 CNN 방송 내용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영어회화반에서는 수업시간에 프리젠테이션 하는 법과 리포트 쓰는 법 등 이씨에게 당장 필요한 학습 노하우를 꼼꼼히 가르쳐 주었다.

2학기 때는 역사 지리 심리학 작문 4개 과목을 수강했는데 첫 학기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이씨는 1, 2학기 9개 과목 모두 A학점을 받았다.

“자랑할 건 못 돼요. 남자 유학생들은 성적이 나쁜 사람들이 많지만 애 딸린 엄마들은 전부 A학점을 받거든요.”

이씨는 이번 가을 학기부터 학부 과정을 그만두고 2년 과정의 테슬(Teaching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을 시작한다. 3년 반 만에 학부 과정을 마치고 귀국할 생각이었지만 4, 5년은 걸릴 것 같아 전공을 바꾼 것이다. 이씨는 서울로 돌아가면 영어 학원을 운영할 계획이다.

#5. 지원아, 아빠는 네가 너무 보고 싶구나

아버지 송씨는 한 학기에 한번 미국의 가족 곁으로 날아가 한 달간 머물다 온다. 올 여름에도 한달 동안 온 가족이 미국의 서부를 여행했다.

“한번 갔다 돌아오면 열흘 동안은 아무 일도 못 하겠어요. 집사람도 그렇다더군요. 저도 미국에 함께 갈까 생각했지만 거기서 제가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어요.”

송씨는 이씨와 남매가 미국으로 가자 살던 집을 세주고 본가 근처 원룸으로 옮겼다. 짐은 시골의 친척집에 보관해두었다. 식사와 빨래 등은 모두 본가에서 해결한다. 주말이면 친구나 사촌 형제들과 산에 오르거나 음악을 듣는다.

“아이들 보고 싶은 것 참는 게 힘들어요. 특히 딸아이는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힘들여 가서 자리 잡았으니 계획대로 3년을 채우고 와야겠지요.”

남매는 미국생활에 만족해한다. 한국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선생님들이 착하고 학교에 다니는 게 즐겁다. 집 근처엔 온통 아름드리 나무에 사슴 반딧불이 거북이도 흔하다.

이씨 가족은 1년을 ‘무사히’ 떨어져 살았다. 하지만 남은 2년도 그럴 수 있을지는 이씨도 송씨도 자신이 없다. 아버지의 부재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에 어떤 후유증을 낳을지 걱정된다. 아들 지섭이는 중국인 학생과 늘 붙어다닐 뿐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미국인 친구들이 아직 없는 눈치다.

이씨가 다니는 학교에는 아이들을 따라 유학온 엄마들이 3명 더 있다. 대학 교수들은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별거를 자처하는 이들을 보며 당사자들이 민망할 만큼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미국 교수들의 말대로 “한국 학부모들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경쟁적”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