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년 마사오(유스케 세키구치). 여름방학을 맞았지만 갈 곳도, 함께 놀 친구도 없다. 다른 도시에 일하러 나갔다는 엄마가 보고싶어 주소만 달랑 들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다. 할머니의 친구는 마사오에게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건달 남편 기쿠지로(기타노 다케시)를 보호자로 딸려 보낸다.
함께 길을 떠난 아홉 살 소년과 중년의 건달.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은, 이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좌충우돌 여행담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기타노 다케시는 ‘비트 다케시’란 예명을 가진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이면서도 영화에서는 ‘소나티네’ ‘하나비’처럼 비장하고 사색적인 작품세계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감독. ‘기쿠지로의 여름’은 침묵과 격렬한 폭력이 교차하고 대사와 설명이 극도로 생략된 그의 이전 영화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코미디언으로서 기타노 다케시의 면모를 드러내는 영화. 주인공들이 여행길에서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로드 무비(Road Movie)의 뼈대에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 Comedy)로 살을 붙였다.
“거 참, 우울한 소년이구만.” 마사오를 처음 본 기쿠지로가 툭 내뱉은 첫 마디다. 그 말처럼 마사오는 측은한 외톨박이. 기쿠지로는 그런 마사오를 보호하기는커녕 경륜장에서 가진 돈을 다 날리고 아이를 구박하며 약한 사람들에게만 큰소리치는 한심한 인생이다. 그러나 기쿠지로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자신의 어릴적 모습을 외로운 소년 마사오에게서 발견하면서 둘 사이에는 서서히 공감대가 형성된다. 감상적인 주제이지만 부러 감동을 자아내려고 억지부리지 않는 점이 ‘쿨’한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답다.
여름방학을 맞은 건 정작 마사오인데도 제목이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여름’이듯 기쿠지로의 온갖 황당한 건달짓이 영화의 주요 소재. 길거리에서 히치 하이킹에 실패하자 차를 세우기 위해 벌이는 소동, 침울한 마사오를 위로하기 위해 길에서 만난 청년들과 벌이는 놀이 등 포복절도할 만큼 웃기는 장면들이 끊이지 않는다. 단, 이야기 진행 속도가 약간 느린 탓에 121분의 상영시간이 좀 길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듯.
기쿠지로라는 이름은 기타노 다케시가 자신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온 것. ‘소나티네’ ‘키즈 리턴’ ‘하나비’등 기타노 다케시의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음악을 맡았던 히사이시 조가 이번에도 음악을 맡아 ‘명랑 분위기’ 형성에 일조했다. 전체 관람가. 30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