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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일병 타살목격 사병8명 헌병대 조사후 포상휴가

입력 | 2002-08-22 18:12:00


1984년 술 취한 하사관(현 부사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허원근(許元根) 일병의 자살조작 사건(본보 21일자 A30·31면 보도)과 관련해 당시 군 내무반에서 사건 현장을 목격한 사병들이 헌병대의 조사를 받은 직후 포상휴가를 다녀온 것으로 밝혀져 군부대 차원의 조직적인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2일 “사건 직후 군 사단 헌병대가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병 8명을 상대로 2주간 조사를 실시했고 조사가 끝난 뒤 이 사병들이 3, 4일씩 포상휴가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시 헌병대는 사병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집게로 머리카락을 뽑고 무릎 사이에 곤봉을 끼워놓고 밟는 등 가혹행위를 했으며 조사가 끝난 뒤 ‘관련 사실을 외부에 일절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은 것으로 밝혀져 그 배경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의문사위측은 덧붙였다.

또 의문사위는 사단과 연대측이 사건 당일 오전 허 일병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사단 헌병대 조사에서 사고 발생시간을 이날 오후 1시20분으로 처리한 수사 결과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냈다.

사건 당일 오전 2∼4시경 허 일병이 사망한 이후 대대급 간부가 참석한 대책회의에서는 이 사건을 자살로 은폐하기로 하고 이날 오전 7시경 연대에 자살사건으로 보고했으며 이어 이날 오전 중 사단에도 보고됐다는 것.

이에 따라 의문사위는 오전 중 보고를 받은 연대와 사단측이 사고 발생시간을 오후로 처리한 사단 헌병대의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상급 부대에서도 사건 전말을 알면서 이를 숨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당시 허 일병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해당 중대장이 구속 기소된 것과 관련해 군 검찰 내부에서도 자살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허 일병의 자살을 유발한 가혹행위’ 등의 혐의로만 해당 중대장을 구속 기소해 군 검찰에도 모종의 압력이 가해졌을 것으로 의문사위측은 보고 있다.

의문사위는 허 일병이 하사관이 쏜 첫 총탄에 맞은 뒤 그 자리에서 사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허 일병에게 추가로 총 두 발을 쏘도록 한 배경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