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투기혐의자 483명에 대해 전례 없이 자금출처를 조사하는 것은 부동산투기에 대한 전면전(全面戰)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조사대상자 중에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 일부 중상류층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변호사 장모씨(50)와 의사 김모씨(46·여) 부부는 연간 합산소득을 800여만원으로 신고했다. 그러면서도 아파트 10채, 상가 및 단독주택 6채 등 모두 16채의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조사결과에 따라서는 수십억원대의 소득세를 추징 당하고 국세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시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주부 송모씨(55)는 99년 이전부터 수도권에 아파트를 9채나 가졌으며 2000년 이후엔 강남 재건축아파트 17채를 추가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26채의 아파트를 가진 송씨는 신고한 소득이 없는 것으로 돼 있다.
특히 국세청은 지금까지 사람별로 이뤄진 조사와 달리 이번에는 가구별로 진행하는 통합조사를 벌인다.
한마디로 모든 금융조사기법을 동원해 의심 가는 부동산 매입자금의 뿌리를 파헤친다는 것이어서 한층 강도가 높다.
일단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에서 재건축 바람과 함께 가격이 급등한 아파트는 모두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 대표적인 아파트단지는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송파구 잠실동 주공아파트 △강남구 도곡동 도곡주공아파트 등이다.
국세청은 해당지역 아파트 거래자 중 ‘능력은 없으면서도 거액의 아파트를 산 사람’의 돈줄을 정밀 추적한다.
조사대상은 △개인별 가구별로 부동산 취득건수가 많은 경우 △신고소득에 비해 부동산 취득 능력이 부족한 경우 △미성년자 등 30세 미만 저연령층으로 부동산 취득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 등이다. 다만 1가구 1주택자가 투기 의도가 없이 아파트를 사들인 경우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
국세청은 조사대상자들을 상대로 △직계존속 또는 배우자 등 특수관계인으로부터의 증여를 받았는지 여부 △탈세에 따른 부당소득 여부 △기업자금 부당사용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따질 예정이다.
또 소득이 충분한 사람이라도 실제 부동산 취득자금의 출처를 철저하게 검증해 증여와 사업소득 탈루 등을 가려내기로 했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중 소득을 적게 신고하고 아파트에 투기한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소득세 탈루여부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국세청은 1차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같은 기준에 따라 2차 조사대상을 골라 조사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