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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슈]정치권 "밀리면 끝장" 전면전

입력 | 2002-08-22 18:42:00

'정치검찰'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원 200여명 - 변영욱기자


정치권에 그 어느 때보다 화약냄새가 짙어지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의 ‘병풍(兵風) 쟁점화 요청’ 발언 파문으로 조성된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의 전선이 한나라당의 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제출방침에 따라 ‘사생결단’식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아도 ‘병풍’을 하루빨리 진화해야할 필요성이 컸고, 민주당도 ‘여기서 한나라당의 공세에 밀리면 끝장’이라며 배수진을 칠 기세여서 양측의 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측이 장대환(張大煥) 총리서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당론으로 부결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함에 따라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다.

우선 김 법무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되고 장 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정국은 ‘국정공백’ 상태에서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로는 각료의 임명제청권을 가진 총리가 공석인 만큼 대통령이 후임 법무장관조차 임명할 수 없어 헌정사상 초유의 검찰수뇌부 장기 공백사태가 초래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운영이 사실상 ‘뇌사(腦死)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현실적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한나라당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 같은 극한적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실제 한나라당은 이해찬 의원의 발언파문을 정국대반전의 호기로 삼고 차제에 병역비리수사를 잠재우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검찰수사를 방관할 경우 97년 대선정국에서 들었던 고배를 다시 맛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병역비리수사를 ‘청와대 연출→민주당 배후조종→검찰 주연’의 시나리오로 몰아붙이면서 12월19일 대선까지 원내 과반수를 무기로 정국주도권을 쥐고 범여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에 착수한 듯한 분위기다. 장 총리서리 임명동의안 부결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민주당으로서도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민주당은 당내 분란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지지율 하락 등 각종 악재 속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병역비리의혹 수사로 가까스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자평해왔다. 그런 만큼 내부 결속과 대선승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라도 결사항전이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우리는 이제 사실상 야당”이라며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또 정국대치가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도 하는 듯하다. 잘하면 ‘한나라당의 오만’을 부각시키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내주 중 김 법무장관 해임안을 단독으로라도 처리한다는 강경자세다.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22일 “특정정당의 단독국회를 요구할 경우 사회를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해임안 처리가 늦춰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 경우 양당의 대치상태는 오히려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