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씨네리뷰]휴 그랜트 주연 '어바웃 어보이'

입력 | 2002-08-22 18:46:00

마커스(맨 오른쪽)가 윌의 삶에 뛰어들면서 외딴 섬 같던 두 사람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사진제공 UIP코리아


《첫 만남에서 서로에 대한 그들의 평은 이랬다. ‘꼴통’, ‘꼰대’.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는 서른 여덟살의 철부지 ‘백수’가 열 두 살의 애어른 ‘왕따’를 만나면서 점차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특수 효과로 덧칠된 여름 영화에 식상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뭉클한 영국 코미디. 영화는 주인공인 백수건달 윌(휴 그랜트)과 왕따소년 마커스(니컬라스 호울트)의 시점을 번갈아 오가면서 재치있는 대사를 곁들여 경쾌하게 펼쳐진다.》

백수건달〓인간은 모두 섬이다. 옛날에는 서로들 의지하고 살았지만 그때는 TV도, DVD도,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기계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현대인은 낙원의 섬에서 혼자 잘 산다. 일? 안한다. 예전엔?...그때도 안했다. 아버지가 작곡한 유일한 히트작인 캐롤송 ‘산타의 슈퍼 썰매’의 저작권료를 챙겨서 취직할 틈도 없이 바쁘게 산다. CD도 사야하고, 머리도 다듬어야 하고, 최신형 아우디 자가용을 타고 드라이브도 해야 한다.

왕따소년〓난 외롭다.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엄마와 난 그 틈에 낄 수 없다. 엄마는 우울증 환자다. 툭하면 훌쩍거린다. 학교에 가면 괴롭다. 아이들이 시비를 건다. 난 그저 낡은 구두에, 무지개가 그려진 이색적인 가디건을 입고, 약간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물론 가끔 고리타분한 옛 팝송을 부르기도 하지만.

백수건달〓여자? 애 데리고 혼자 사는 ‘싱글 맘’이 최고다. 화끈한 섹스에, 조금만 잘해줘도 자상하다는 칭찬, 무엇보다 좋은 건 부담없는 이별!. 그래서 난 ‘독신부모 모임’에 가입했다. 물론 약간의 연기력과 함께 두 살 짜리 가공의 아들 ‘네드’를 꾸며내야 했다. 어느날 이 모임을 통해 괴상한 ‘꼴통’ 소년을 만났다. 그런데 맙소사! 그날 밤 이 꼴통의 엄마인 히피 여인이 자살을 기도했다!

왕따소년〓엄마의 자살 소동을 겪고 깨달았다. 둘 만으로 부족하다. 셋은 되야 한다. 그래야 한 명이 사고를 쳐도 혼자 남지 않는다. 엄마 친구에게 흑심 품은 저 ‘꼰대’를 우리 엄마와 엮어줘야겠다. 네드라는 두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건 다 뻥 같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만 빼고는 괜찮아 보인다.

▽어바웃 어 보이〓‘소년에 관하여’라는 제목에서 ‘소년’은 엄밀히 말하면 ‘소년들’이어야 한다. 소년은 마커스이자 윌이기도 하다. 애어른 마커스는 윌에게서 아이 노릇을 배워가고, 철부지 윌은 마커스가 자신의 삶으로 걸어들어 온 뒤 어른이 된다. 그리고 윌은 깨닫는다. “인간은 섬이다, 체인망으로 연결된!”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커스가 우울증이 도진 엄마를 위해 교내 록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는 부분. 마커스는 학교에서 ‘매장될’ 각오를 하고 엄마의 18번인 로버타 플랙의 흘러간 팝송 ‘킬링 미 소프틀리’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윌은 마커스를 구하기 위해 학교로 달려가고, 두 사람은 야유를 한 몸에 받으며 노래를 부른다.

아이가 있는 주부 관객이라면 엄마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마커스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힐 듯 하다. 휴 그랜트의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영화. ‘아메리칸 파이’등을 만들었던 폴과 크리스 웨이츠 형제 감독 작품. 12세 이상. 23일 개봉.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