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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고 나서]"가난은 어째서 사라지지 않을까요"

입력 | 2002-08-23 17:44:00

무하마드 유누스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이번 주 1면에 소개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인간은 기아나 가난으로 고통받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오늘날에도 과거처럼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다만 우리가 그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소액대출을 위주로 서민들의 가난구제를 하는 은행을 설립한 그의 기록은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한 사례이기에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파트 10채를 사들인 변호사 의사 부부가 연간 소득이라고 신고한 금액이 800여만원이라고 합니다.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어 탈세를 하고 탐욕을 부립니다. 보통 사람들의 관심도 온통 돈 버는 데로만 쏠려있습니다. ‘부자되는 길’에 관한 재테크책들이 인기를 끌고 ‘부∼자’ 되라는 광고카피는 덕담처럼 비쳐집니다. 이 책은 어느 사이에 ‘가난’이라는 주제를 ‘공식 퇴출’시킨 듯 철저히 외면하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란 점에서 골라보았습니다.

1995년 방글라데시 그라민 지점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여사. 클린턴 부부는 지금까지 그라민 은행 소액융자의 한결같은 지지자들이라고 한다.사진제공 세상사람들의책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통찰한 ‘역사 속의 영웅들’(3면)에서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축적의 욕심을 억제하지 않는 다면 산발적 도둑질, 대규모 강도질, 정치적 부정부패 등이 널리 퍼질 것이고, 부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집중되어 마지막에는 혁명을 부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3면에 다룬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우리 것의 참 아름다움을 가려내는 눈을 틔워주는 책입니다. 혼탁한 언어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힘든 향기로운 글이 실려 있습니다. 단지 좋은 문장 만으로 명문(名文)이 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내용이 알차고 글쓴이의 혼이 담겨 있어야 좋은 글이라는 뜻이죠. 우리를 둘러싼 산천과 생명, 조형물들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미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기품있는 글의 힘도 느껴보십시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2면)은 비트겐슈타인을 통해 구도자로서의 철학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를 꼼꼼하게 짚어본 책입니다. 3년전에 번역 출간된 책이지만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소중한 정신의 양식이 된다는 점에서 서평을 소개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와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표정을 지닌 책입니다. 재생지를 사용하고 표지 꾸밈새도 화려하지 않지만 읽다보면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날 때처럼 흐뭇한 기분이 듭니다. 겉 풍경과 안에 담긴 메시지가 충돌 없이 조화로운 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