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는 비록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강팀 천안북일고에 패하긴 했지만 이번대회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학생야구의 진수’를 선보였다. 경기마다 투지를 발휘하며 믿어지지 않는 역전승을 거두고 이 대회 30년만에 결승에 진출, 우승보다 값진 준우승을 이끌어낸 것.
중앙고의 ‘역전 신화’는 2회전 경기부터 시작됐다. 중앙고는 ‘영남의 자존심’ 대구상고에 3-2 역전승을 따냈고 부천고와의 16강전에선 8-10으로 뒤진 9회초 4번 김태우가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을 날려 13-11 승리를 거뒀다.
분당 야탑고와의 8강전은 더 드라마틱했다. 중앙고는 초반대량실점하며 4회까지 1-8 7점차로 뒤졌지만 5회부터 대반격을 시작, 차근차근 따라붙은 뒤 9회말 김재우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끝내 9-8로 경기를 뒤집은 것.준결승에서 순천 효천고마저 무너뜨리고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자 조윤식감독은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 했지만 중앙고 선수들의 불같은 투지가 없었다면 봉황대기 준우승은 주어지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1910년 창단돼 92년의 야구역사를 자랑하는 중앙고는 6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명문. 61년과 62년 황금사자기 연속 준우승을 일궈냈고 65년엔 대망의 황금사자기를 품에 안은 뒤 청룡기에서도 준우승을 거뒀다. 60년대 중반 당시 멤버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국내 프로야구 MBC 청룡에서 활약했던 투수 이원국씨와 이원호(포수) 박노국씨(외야수).
70년대초엔 4번타자겸 투수를 맡던 윤몽룡씨(백혈병으로 작고)의 걸출한 활약으로 72년 청룡기 우승과 봉황대기 준우승을 차지해 강팀으로 군림했었다. 하지만 이후 중앙고는 전국대회에서 단 한번의 우승도 올리지 못하며 그동안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는 공부와 학업을 철저히 병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중앙고 특유의 학풍때문이라는 게 허구연 MBC해설위원의 설명.
25일 동대문구장에 나온 허구연 MBC 해설위원(70년 경남고졸업)은 “중앙고가 결승에 올라왔다길래 깜짝 놀랐다. 학업을 우선시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중앙고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팀”이라며 “‘프로’같은 상대들을 누르고 결승에 오른 것 만도 대단하다”고 말했다.30년만의 우승을 놓쳤지만 경기가 끝난 뒤 중앙고 선수들의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한 이유을 알 수 있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