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자동차회사들이 시민단체들과 합의한 경유자동차 배출가스 감축계획서에 서명하는 것을 산업자원부가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을 접하고 지금 일본에서 한창 진행 중인 ‘도쿄 자동차공해 소송’이 떠올랐다. 이 소송은 간선도로변에 사는 500여명의 주민들이 디젤자동차의 배기가스로 천식 등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다며 96년 5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정부와 자동차회사들을 상대로 220억원의 피해배상과 디젤자동차 생산축소 등을 요구한 것인데, 지난해 12월 심리를 끝내고 올 10월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이 소송의 쟁점들은 대략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관지천식의 원인은 디젤자동차 배기가스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자동차회사들은 천식이 알레르기성 질환이라고 주장하지만 디젤자동차 배기가스가 천식의 원인이라는 것은 가와사키, 나고야 등의 법원 판결을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 이러한 판결의 근거가 된 연구결과 중에는 디젤차량의 배기가스에 포함된 미세먼지가 기관지천식의 발병을 촉진한다는 동물실험을 비롯해 초등학생의 천식 발병률이 도시는 시골의 2배라는 역학조사 결과도 있다.
둘째, 디젤차량 증가의 책임은 자동차회사와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70년대 후반부터 트럭의 디젤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75년 20%를 약간 넘던 디젤트럭이 85년에는 50%, 95년에는 75%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셋째, 자동차회사들이 디젤차량 개선대책을 고의로 기피했다는 것이다. 디젤엔진은 직접분사식과 부실(副室) 식의 두 가지가 있는데 부실식 엔진에 연료분사시기 지연기술을 사용하면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직접분사식이 이윤이 더 많다는 이유로 부실식이 주류였던 중소형 트럭과 버스를 직접분사식으로 교체했다.
넷째, 국내용과 수출용의 적용기술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스즈자동차가 생산한 6BDI-T형 디젤엔진의 미국 수출용은 일본 국내용보다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30% 정도 적었는데 분사시기 지연기술을 미국용에만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 정보를 은폐한 정부도 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동차공해가 문제되지 않은 이유는 자동차 배기가스의 유해성이나 방지기술의 개발, 규제기준 강화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정부와 자동차회사들이 독점하고 국민에게 은폐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82년 디젤차량 배기먼지를 규제하기 시작했을 때 일본 정부도 배기먼지 규제를 위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보고서까지 만들었지만 10년 동안 규제를 보류하고 보고서도 은폐했다는 것이 이번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일본의 자동차 공해문제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에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일본의 전철을 교훈삼아 법원까지 가기 전에 정부가 먼저 국민건강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자동차정책을 전환시키는 게 좋겠다는 것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좋은 기술이 있으면서도 건강에 해로운 배기가스를 더 많이 배출해 이익을 남기는 것은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신창현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