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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증시 無위험거래? 이젠 꿈이야!

입력 | 2002-08-26 17:41:00


【아비트라지(arbitrage). 증시에서 ‘무위험(무위험) 거래’나 ‘차익거래’로 번역되는 투자 기법이다. 이론적으로는 아비트라지를 이용하면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항상 돈을 벌게 돼 있기 때문에 ‘무위험 거래’라고 한다.

‘주식투자에서 어떻게 무위험 거래가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만하다. 아비트라지는 정상적인 투자 방법이 아니다. 시장이 비정상적일 때,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작은 틈새를 이용해야 아비트라지가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 증시에서 아비트라지의 기회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최근 아비트라지를 시도한 전문 트레이더들이 무더기로 큰 손해를 입을 뻔한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효율적으로 변할수록 아비트라지의 기회는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증시가 발전할수록 ‘공돈’ 생길 기회는 없어진다는 뜻이다.】

▽아비트라지란?〓1999년 한미은행은 ‘한미은행 6우B’라는 우선주를 발행했다.

일반적으로 우선주는 보통주보다 인기가 없고 주가도 낮다. 이 때문에 발행 기업은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우선주에 몇 가지 혜택을 준다. 한미은행은 ‘6우B’를 발행하면서 “3년 뒤 보통주로 전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한미은행 주가는 보통주 1만원선, 우선주 6000원선이었다.

아비트라지 전문가들은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했을까. 우선 한미은행 보통주를 장기 보유하고 있는 기관투자가를 찾아 “3년 뒤 이자를 넉넉히 쳐서 갚겠다”며 보통주를 빌렸다. 그리고 이 주식을 모조리 팔아 그 돈으로 ‘한미은행 6우B’를 샀다.

보통주 100주를 빌려 팔았다면 이 돈으로 대략 우선주 167주를 살 수 있다. 그리고 3년 뒤 우선주를 한미은행에 들고 가 “약속대로 보통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 우선주 167주를 보통주 167주로 바꾸면 빌린 100주를 갚고도 67주가 남는다. 이자를 쳐주고도 쏠쏠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한미은행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이 거래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

▽굿모닝·신한 합병의 우여곡절〓6월 말 굿모닝증권과 신한증권의 합병이 결의되면서 또 한번 아비트라지의 기회가 생겼다.

문제는 ‘주식매수청구권’이었다. 두 회사가 합병할 때에는 합병에 찬성하는 주주도 있지만 반대하는 주주도 있기 마련. 주식매수청구권이란 합병에 반대하는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회사가 적정한 가격에 사주는 제도다.

굿모닝증권은 당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주식을 6617원에 사주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굿모닝증권 주가는 5500원선이었다.

5500원짜리 주식을 사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6617원을 받을 수 있으니 무조건 주당 1000원 이상 남는 장사. 아비트라지를 노린 전문 트레이더들이 벌떼처럼 굿모닝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합병 조건 중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전체의 35%를 넘으면 합병을 취소한다’는 조항이 문제가 됐다. 아비트라지를 노린 투자자들은 무조건 합병에 반대하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사람들이다. 이들 때문에 합병에 반대하는 투자자가 35%를 넘어서면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것.

다급해진 굿모닝증권은 “회사의 미래를 믿고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투자자에게 호소하고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5500원에 사서 6617원에 파는 게 목적인 아비트라지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미래’란 관심 밖 이야기.

당시 아비트라지를 노리며 6억원을 투자해 굿모닝증권 주식을 샀던 한 투자자는 “무위험 거래로 믿고 들어갔는데 사실 무위험이 아니라 ‘큰 위험’ 거래였다. 합병 자체가 무산됐다면 엄청난 손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지난달 8일 두 회사의 합병은 성사됐다.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투자자가 31.51%로 35%보다 아슬아슬하게 낮았다. 만일 합병이 무산됐다면 한국 증시에서 아비트라지가 실패한 첫 번째 공식 사례로 남을 뻔한 사건이었다.

▽사라지는 아비트라지〓한국 증시에서 아비트라지 기회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모두가 기회를 알고 있다면 그 기회는 기회가 아니다. 과거에는 아비트라지 개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아비트라지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시장이 발전하고 거래기법이 선진화되면서 이제 아비트라지는 더 이상 몇몇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에도 LGEI의 LG전자 주식 공개 매수, 더존디지털웨어와 뉴소프트기술 합병 등 몇 차례 아비트라지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무위험 투자 기회가 생겼다”고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투자자에게 널리 알려졌다. 더존디지털웨어와 뉴소프트기술 합병은 아비트라지를 노리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려는 투자자 탓에 합병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새턴투자자문 박정구 부사장은 “시장 참여자가 많을수록, 또 시장 정보가 효율적으로 유통될수록 아비트라지 기회는 사라진다”며 “몇 년 전과 달리 현재 한국 증시에서 아비트라지 기회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