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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소녀들의 축구 반란기 ‘슈팅 라이크 베컴’

입력 | 2002-08-26 18:19:00

베컴같은 축구선수가 되고싶은 열여덟살 소녀들. 코믹하고 따뜻한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편견과 선입견의 벽을 가르는 시원한 슛을 날린다.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영국 축구 영웅 데이빗 베컴의 인기 비결 가운데 하나는 남성과 여성이 혼재된 혼성 이미지. 그는 축구 선수들은 거칠고 우락부락한 ‘싸나이’들뿐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렸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진 천방지축 소녀들의 축구 반란기 ‘슈팅 라이크 베컴 (Bend It Like Beckham)’도 고정 관념의 유쾌한 뒤집기를 시도하는 영화다. ‘축구〓남자들 것’이라는 공식 뿐만 아니라, 차이와 대립을 다룬 영화는 진지하고 심각할 것이라는 선입견까지 날려버린다.

런던에 사는 인도 소녀 제스(파민더 나그라)의 꿈은 베컴같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 역시 축구선수를 꿈꾸는 영국 소녀 줄스(키이라 나이틀리)의 권유로 여자 축구단에 입단한다. 영국에 살면서 인도인의 전통 가치를 고수하는 제스 부모의 눈에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축구장을 뛰어다니는 딸이 곱게 보일리 없다.

제스 부모의 결사반대에는 이유가 있다. 부모를 설득하러 찾아온 코치 조(조나단 라이스 마이어스)에게 제스 아버지는 “나도 한때 촉망받는 크리켓 선수였지만 영국에 오니 아무도 안받아줬다. 남자도 안되는데 여자가 되겠느냐”고 일침을 놓는다.

반면 서양인인 줄스의 부모는 축구선수가 되려는 딸을 지원한다. 이처럼 영국인과 인도인의 서로 다른 문화, 남의 땅에서 사는 이방인의 설움, 구세대와 신세대, 남자와 여자 등 차이가 빚어내는 충돌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요 장치들. 이것뿐이었다면 그저 ‘의식있는 영화’에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런 평범함을 넘어 차이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워버린 건강함에 있다.

제스는 차이를 그저 ‘다른 것’으로 인식할 뿐, ‘차별’이라 분개하지도, ‘나는 안될거야’라며 지레 겁먹지도 않는다. 커브슛을 뜻하는 원제처럼, 등장 인물들은 차이와 대립을 정면돌파하기 보다 유연하게 우회하며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 결승전에서 제스가 찬 볼이 네트를 가르는 순간과 결혼에 목숨 건 제스의 언니 핑키(아치 판자비)의 결혼피로연 파티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 교차편집되는 후반부는, 각자가 선택한 삶의 마당에서 주인공이 되는 두 사람에 대한 축복이다.

줄스 엄마의 코믹 연기, ‘벨벳 골드마인’에서 글램록 가수로 열연했다가 이번에는 풋풋한 청년으로 변신한 조나단 라이스 마이어스 등 조연들의 든든한 뒷받침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띄우는데 일조한다. 축구팬이 아니어도 흥겹게 볼 수 있지만, 혹독한 훈련을 받은 배우들의 축구 장면들도 볼거리다. 90년대 영국 축구의 스타 게리 리네커가 축구경기 해설 장면에 등장한다. 인도계 영국인인 여성감독 거린더 차다의 세 번째 작품. 올해 4월 영국에서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12세이상 관람가. 30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