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기업분할로 LG전자를 떼어낸 LGEI(옛 LG전자)에는 직원이 단 1명도 없다. LG전자 직원 10여명이 업무를 대행하고 대표이사도 LG필립스LCD 구본준(구본준) 대표가 겸임한다. 기업을 나누기 전 ‘옛 LG전자’의 주요 사업과 모든 직원은 ‘신설 LG전자’에 남았고 LGEI는 데이콤 하나로통신 LG텔레콤 등 자회사의 지분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옛 LG전자가 자회사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불신 때문에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자 LGEI에 자회사 지분을 남기고 ‘돈 되는 사업’은 신설 LG전자에 넘긴 것. 두 회사의 명암(명암)은 주가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신설 LG전자는 상장 후 연일 상한가를 친 반면 LGEI는 하한가의 수렁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1개의 기업을 여러 개로 쪼개는 ‘기업분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98년 기업분할이 처음 허용된 뒤 99년 7건에서 해마다 늘어 올해엔 13건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 ‘밸류미트’의 김정호 회계사는 “부실사업 부문을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기업분할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방법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1개의 기업을 여러 개로 쪼개는 ‘기업분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98년 기업분할이 처음 허용된 뒤 99년 7건에서 해마다 늘어 올해엔 13건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 ‘밸류미트’의 김정호 회계사는 “부실사업 부문을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기업분할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방법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수단에서 전문화로〓기업분할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도입됐다. 외환위기로 급증한 부실기업을 청산하면서 경쟁력 있는 사업 부문을 살려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우그룹의 정리. 대우중공업과 ㈜대우는 우량사업 부문을 기업분할해 살리고 부실자산은 모두 잔존회사에 남겨 청산하는 절차를 밟았다.
고합도 대표적 성공사례. 지난해 12월 채권단은 고합에서 우량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을 떼어내 기업분할한 ‘KP케이칼’에 넘겼다. 고합은 지난해 7909억원의 순손실을 냈지만 ‘KP케이칼’은 올 상반기 39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국민은행 이성규 부행장은 “기업분할이 없었다면 우량사업 부문마저 부실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실기업뿐만 아니라 △시너지 효과가 없는 이업종(異業種)을 분리하거나 △사업별 전문화를 위한 방법으로 기업분할이 각광받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유통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11월 현대백화점(유통 부문)과 현대백화점GF(비유통 부문)로 기업을 분할하겠다고 밝혔다.
동양제과 역시 9월 말 핵심사업인 제과 부문을 동양제과에 남기고 외식사업 부문은 신설회사인 라이즈온에 넘기는 기업분할을 할 예정이다.
▽가려졌던 부문이 드러난다〓기업분할의 장점은 한 회사에 있을 때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우량사업 부문의 실적이 부각된다는 것. 마루자재와 합판자재를 만드는 이건산업은 최근 “마루자재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지만 합판사업의 손실에 묻혀 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9월 말 마루자재사업 부문을 떼어내 신설회사인 이건마루로 넘긴다”고 밝혔다.
분할 이후 사업 부문별 성적이 예상과 딴판인 경우도 있다.
동원산업은 2000년 말 해양수산 부문을 신설 동원산업으로, 식품 부문을 동원F&B로 각각 넘기며 “식품 부문의 수익이 낮아 해양수산 부문의 수익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동원F&B의 올 상반기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100% 이상 증가한 반면 동원산업은 같은 기간 매출과 순이익이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주가도 동원F&B는 분할 당시보다 4배가량 올랐지만 동원산업은 답보상태다.
현대증권 신희영 애널리스트는 “동원F&B는 안정적 수익에 높은 배당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동원산업은 환율, 어획량 등 영업환경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역(逆) 시너지’와 부작용〓그러나 기업분할에는 항상 ‘역(逆) 시너지’에 대한 부담이 있다. 핵심역량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하면 오히려 ‘중복비용’만 감수해야 한다.
고합의 분할을 담당한 우리은행 신언동 부부장은 “동일한 업무가 두 회사에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2배의 직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처럼 기업분할을 발표한 뒤 주가가 내리는 경우도 있다. KGI증권 이수현 애널리스트는 “현대백화점은 이미 유통사업 부문에 주력하고 있어 기업분할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기업분할과 지주회사를 ‘2세로의 경영승계’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부작용을 지적한다. 현대백화점도 잔존법인인 현대백화점GF를 지주회사로 만들어 ‘2세로의 경영승계’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지주회사(현대백화점GF)는 일반적으로 주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대주주로서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늘리면 적은 비용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모그룹 회장이 기업분할 후 주가가 크게 내린 지주회사 지분을 늘리고 주가가 급등한 회사의 지분을 처분한 사례도 있다. 교보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대주주는 지주회사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면 합법적으로 인수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