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법칙이야. 아들들은 아버지들을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다구”. 그리스 비극처럼 비장한 ‘로드 투 퍼디션’은 어깨가 무거운 아버지들, 그런 아버지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들들 사이의 애증을 묵직하게 그렸다. 사진제공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아버지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부터 아들을 구원할 수 있는가. 아들은 또 어떻게 아버지를 극복하는가. 올들어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중 내년 아카데미 작품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로드 투 퍼디션 (Road To Perdition)’은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관계를 중심에 둔, 비장한 갱스터 영화다.
이 영화에서 ‘퍼디션’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파멸’을 뜻함과 동시에 도피길에 오른 아버지와 아들의 최종 목적지인 피신처의 지명을 가리키는 것.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바닷가가 곧 파멸의 장소가 되는 셈이다. 비극적 아이러니를 향해 치닫는 복수의 여정에는, 숙명적으로 얽힌 세 쌍의 부자관계가 놓여 있다.
▽아들아, 나처럼은 살지 말아라〓1931년 대공황기의 시카고. 마피아 조직의 이인자인 마이클 설리반(톰 행크스)의 어린 아들 마이클 주니어(타일러 후츨린)는 자신에게 엄격한 아버지의 직업이 늘 궁금하다. 아들은 몰래 아버지의 차에 숨어들어 아버지의 실체를 목격하고, 철없는 호기심은 피를 부른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떠난 도피와 복수의 여정. 마이클 설리반은 아들이 자신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부터 아들이 구원받기를 갈구한다.
▽아버지된 자의 숙명〓마피아 보스 존(폴 뉴먼)은 친아들 코너(대니엘 크레이그)가 늘 마땅찮다. 코너는 아버지의 사랑을 자신보다 더 많이 받는 양아들 마이클 설리반을 질투한다. 그는 마이클의 아들이 살인현장을 목격했다는 핑계를 앞세워 마이클의 가족을 살해한다. 존은 “너란 놈이 태어난 건 신의 실수”라며 코너를 두들겨 패다가도, 결국 끌어안고 아버지된 자의 숙명을 탄식한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존은 친아들보다 양아들 마이클을 더 아꼈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마이클과 코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존은 친아들을 선택한다. 결국 그는 아들 오이디푸스의 손에 죽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처럼, 친아들 이상으로 아끼던 설리반의 손에 살해된다.
첫 영화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탄 샘 맨데스는 두 번째 영화에서 구원과 속죄의 가능성을 묻는다. 이 물음의 중심에는 아들인 동시에 아버지인 마이클이 놓여있다. 그 자신은 살부(殺父)를 통해 아버지를 극복했지만, 마이클은 아들이 자기처럼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진다.
평소 다정다감한 이미지와 달리 과묵하고 무거운 마피아를 연기한 톰 행크스, 자신의 일생을 비관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폴 뉴먼의 관록있는 연기는 이 영화에 묵직한 무게를 실어준다.
이 영화는 금주법과 공황의 시대를 배경으로 흑백이 불분명한 주인공들이 비에 젖은 거리를 배회하는 갱스터 영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눈이 녹고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청회색조의 화면, 중절모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어둠의 사내들의 음영을 잘 살린 촬영은 탁월하다. 마이클이 빗속에서 존을 습격하는 장면은 폭력을 다루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비명소리 하나 없이 비장하게 촬영된 명장면.
‘대부’만큼의 장엄함은 덜해도, 무거운 주제를 노련한 숙련공의 솜씨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영화다. 제작은 역시 부자관계인 할리우드의 고참 프로듀서인 리차드 D. 자눅과 그의 아들 딘 자눅이 맡았다. 15세이상 관람가. 9월 13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