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속담에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좋은 와인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와인 붐이 일고 있다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와인은 아직 낯설다. 삼겹살에 어울리는 소주, 골뱅이 안주를 곁들여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가 더 익숙하다. ‘더 빠르게’를 요구하는 이 시대에 와인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 ‘원샷’과 ‘폭탄주’가 술자리의 화통함으로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맛을 음미하며 마셔야 한다는 와인은 어쩐지 어색한 거리감을 주기 때문.
‘보르도 와인…’(한길사)의 저자인 고형욱(36·영화사 ‘뮈토스’ 프로듀서·사진)씨는 그런 생각을 바꿔보라고 권한다.
“‘성경’에서 예수가 ‘나의 피’라며 건넸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와인은 서양의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인 와인이 우리에겐 생소한 건 당연하죠.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처음에는 접근하기 어렵겠지만 조금씩 접하다보면 금세 친숙해지는 술이 와인입니다.”
그는 ‘와인 예찬론자’. 몇 십년이 지난 뒤에도 제 맛을 간직하고, 천천히 마시면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와인을 사랑한다. 그는 와인을 통해 쉽게 서양문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나오는 와인 이름을 외워 두었다가 외국의 고급식당에서 특별 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
“와인을 즐겨 마시면서 외국인과 소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보통 고기를 먹을 때는 ‘레드’, 생선이면 ‘화이트’를 선택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와인이든 이름 몇 개만 외워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죠.”
그동안 나온 와인 관련 서적들이 ‘백과사전’ 식이었던 점을 아쉽게 생각하던 차에 그는 이 책에서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 보르도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메독의 강건한 와인과 바르삭 지역의 달콤한 와인 등 각양각색의 맛을 갖고 있는 보르도의 와인들을 소개한다. 특히 각 지역별 와인 바벨을 첨부해 와인의 성격 역사 품질 등을 알려준다. 와인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포도 품종과 블렌딩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보르도는 모든 고급 와인들이 지향하는 하나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보르도 지방은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인들이 포도를 재배한 지역이었고, 해상무역을 통해 전세계로 와인을 수출한 항구도시이죠. 보르도는 현지에 8000여개의 샤또(포도원)가 있을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막강합니다.”
와인은 가격 1만원짜리부터 수천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부담스럽지 않은 중저가 와인부터 시작해 다양한 와인의 맛을 느껴보라는 것이 그의 조언.
그는 이 책을 쓰면서 글 쓰는 즐거움과 와인의 세계를 더 깊이 알게 됐다. 보르도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직접 사진도 찍었다. 수십만원짜리 와인을 직접 맛보느라고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보르도 와인을 전문적으로 소개했다는 점에 보람을 느꼈다. 무엇보다 그는 이 책이 와인의 대중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