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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동의보감(내경편)´

입력 | 2002-08-30 17:48:00


◇동의보감(내경편)/허준 엮음 동의과학연구소 옮김/1992쪽 (판형에 따라) 각각 13만원, 6만8000원, 3만8000원 휴머니스트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서(醫書)가 아니다. 몸을 화두로 풀어 쓴 동양 사상서이자 시대를 뛰어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 되도록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제시하는 수양론이다.

‘소설 동의보감’ ‘TV 드라마 허준’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 동의보감. 그러나 정작 그 원전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 완역판으로는 1974년 남산당에서 발간한 것과 북한판 동의보감을 92년 여강 출판사에서 펴낸 것 등이 나왔다. 각각의 장점이 있는 책들이지만 전자는 한문투가 많아 한글 세대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후자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낯설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번에 한의사 철학자 자연 과학자들이 10여년 동안 강독을 통한 번역 작업을 거쳐 첫 선을 보인 동의보감 완역판은 원문과 함께 매끄러운 한글에 3000여개의 역주를 단 공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기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 같은 선조들의 대표적 문화유산 속에 담긴 우리 정신 문화의 대단함에 대한 자부심과 도교 유가 불가의 사유체계를 아우르는 인간과 자연, 삶을 보는 동양정신의 진수를 함께 느꼈다.

이번에 나온 ‘내경(內景)편’은 몸 안의 세계를 다룬다. (앞으로 외형(外形), 잡병(雜病), 탕액(湯液), 침구(鍼灸)편이 나온다.)

내경편에는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인간관 인체관이 집약되어 있다.

첫 장에 우주 발생론을 펼쳐 놓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하늘의 형(形)은 건괘(乾卦)에서 나오는데 태역(太易),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가 있다. 생명은 태역에서 시작되고 병은 태소에서 시작된다.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신(精·氣·神)이다.’

한마디로 우주나 자연이나 사람이나 태역(혼돈)에서 시작한 변형의 다른 형태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람의 몸은 하나의 우주이며 자연과 사회와 몸도 결국 하나다.

그렇다면 정 기 신은 무엇인가. 정은 부모로부터 선천적으로 받은 바탕, 후천적으로 음식등을 통해 얻는 것이다. 기는 구체적인 우리 몸 내부의 작용이며 신은 그 결과 나오는, 이를테면 ‘정력적이다’ ‘눈빛이 맵다’ 같은 생명력이 발현되는 모든 현상을 일컫는다.

동의보감에서는 이같은 정 기 신을 잘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군주가 누구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듯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몸이 달라진다. 마음이 고요하면 온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어두우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가. 동의보감에서는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사는 것’을 강조한다. 흔히 우리는 병을 ‘예방한다(prevent)’고 하지만 ‘따르는(follow) 삶’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뜻이 느긋하여 욕심이 적고, 마음이 안정되어 두려워하지 않으며, 일을 하여도 몸이 권태롭지 않고 기가 순조롭게 되어, 하고자 하는 것을 따르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된다.’

‘마음 속의 의심과 걱정, 모든 헛된 생각과 불평, 다른 사람과 나라고 하는 구분을 다 버리고 잘못을 깨달아 반성하면 문득 마음과 몸이 내버려 지게 되고, 나의 천(天)과 섬기는 천(天)이 하나가 된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정(性情)이 화평하게 되어, 세상 모든 일이 공허(空虛)이며, 하루종일 하는 일도 모두 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자신의 육신(肉身)도 모두 헛된 환상일 뿐이고, 화(禍)와 복이 따로 없으며 죽고 사는 것도 한갓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깨달음이 떨쳐 일어나 갑자기 모든 의문이 풀어져 곧 마음이 자연히 맑아지고 질병이 저절로 낫는다.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은 이미 없어진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런 상태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 혹은 세속을 떠난 상태가 됨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 남들처럼 살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양생(養生)의 기본이다. 한 마디로 집착이 없는 삶, 자연스러운 삶, 따르는 삶이다.

병은 자연의 흐름에 거슬렀을 때 생겨난다. 물론 외부의 나쁜 기운으로도 병이 오지만 그것은 내 몸이라고 하는 내적 조건에 의해 실현될 뿐이다. 그러므로 병은 도(道)로써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동의보감의 주장이다.

‘옛 사람들이 100세를 넘어도 쇠약하지 않았는데 오늘날에는 나이 50에도 쇠약하니, 이는 도를 잃어 버려서이다. 지금 사람들은 술을 음료수처럼 마시고 기분 내키는 대로 생활하고 취한 상태로 성생활을 하여 정기를 고갈시킨다. 생활에 절도가 없다.’

동의보감하면 허준을 떠올리지만 허준 혼자 이 책을 만든 것은 아니다.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의 민중에 대한 애정과 당대 최고의 단학수련가이자 시인으로 평가받던 의사 정작, 최고의 명의 양예수등이 만들어 낸 팀웍의 산물이다.

조선 최고의 의사들이 펴낸 책답게 곳곳에는 의사가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한 설명이 나와 있다. 500여년이 지났지만, 오늘의 우리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옛날 신성한 의사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서 미리 질병에 이르지 않게 하였는데, 지금 의사들은 오로지 사람의 질병만 치료할 줄 알지 마음을 다스릴 줄은 모른다.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을 쫓고, 그 근원을 찾으려 하지 않고 곁가지만 치료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 또한 어리석지 아니한가? 비록 어쩌다 병이 나아도 이것은 곧 세속의 용렬한 의사가 하는 짓이니 본받을 만 하지 못하다.’

한국인의 몸은 한국의 성장 모델의 또 다른 표현이다. 다이어트 성형 화장 염색 등 몸을 겉으로 이미지화하는 데만 치중해 몸을 혹사시키고 있을 뿐 정작 몸 그 자체, 삶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었다. 동의보감 원전을 읽으며 우리의 삶과 몸과 존재에 대해 사유해보자.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