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정. 동아일보 자료사진
테니스 라켓을 처음 잡았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세계 최고 권위의 그랜드슬램 대회 본선에서 단 1승만이라도 올려보는 게 소원이었다.
한국 여자테니스의 간판스타 조윤정(23·삼성증권)이 메이저 첫 승의 꿈을 이룬 여세를 몰아 32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30일 뉴욕 플러싱메도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 여자단식 2회전. 세계 랭킹 106위 조윤정은 32번 시드의 강호 파올라 수아레스(아르헨티나)를 2-0(6-4, 6-4)으로 눌렀다.
조윤정은 이날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공격적으로 쳤고 첫 서브를 넣는 데 주력했던 것이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첫 세트가 끝난 뒤 승리를 예감했다는 조윤정은 2세트 3-4로 뒤져 위기를 맞았으나 내리 3경기를 따내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로써 조윤정은 한국 여자 선수로는 사상 두 번째로 메이저대회 3회전에 진출, 이형택이 2000년 대회 남자단식에서 거둔 16강(4회전) 신화에 바짝 다가섰다. 한국 여자테니스는 81년 이덕희가 US오픈에서 16강에 오른 뒤 박성희가 15차례나 메이저대회 본선에 출전했으나 2회전에만 7차례 올랐을 뿐이었다.
조윤정의 32강 진입은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쓴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80년대 64명이었던 본선 출전선수가 현재 128명으로 늘어나 있는 데다 남자 못지않은 파워와 신체조건을 갖춘 구미의 선수들이 쏟아져 1승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조윤정은 아시아 여자선수로는 유일하게 32강에 이름을 올렸다.
새로운 신화에 도전하고 있지만 조윤정은 ‘산 넘어 산’의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대회에서 9차례나 우승한 6번 시드의 모니카 셀레스(미국)와 16강 진출을 다투게 된 것.
조윤정은 지난해 10월 일본오픈 2회전에서 셀레스와 맞붙어 0-2(2-6, 3-6)로 패했다. 힘든 상대가 분명하나 조윤정은 “부담 없이 편안하게 치겠다”면서 “다운 더 라인과 강력한 서브가 장기인 셀레스를 많이 뛰게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대회 3연패를 노리는 2번 시드 비너스 윌리엄스, 린제이 데이븐포트, 제니퍼 캐프리아티(이상 미국)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도 이날 나란히 3회전에 합류했다.
남자단식에서 6번 시드 안드레 아가시(미국)는 테니스 스타 출신 아내 슈테피 그라프와 10개월 된 아들 제이든이 응원하는 가운데 32강에 안착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