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 多 益 善(다다익선)
多-많을 다 益-더할 익 賞-상줄 상
陣-진칠 진 謀-꾀할 모 烹-삶을 팽
기원전 202년, 項羽(항우)를 물리치고 漢(한)을 세운 劉邦(유방)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직 나라의 기틀도 잡혀 있지 않은 데다 자신을 도와 나라를 세웠던 여러 장군들을 각지의 왕으로 봉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열심히 싸운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였을 뿐 결코 유방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이 클 수록 유방의 의심도 컸다.
유방이 가장 의심을 품었던 자는 楚王(초왕) 韓信(한신)이었다. 그는 일찌기 ‘背水陣’(배수진)을 친 일화로도 유명한데 사실 項羽를 물리치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장군이었다. 유방은 虎視眈眈(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일단 謀反(모반)의 기색만 보이면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韓信이 項羽의 장수였던 鐘離昧(종리매)를 숨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구실로 韓信을 잡아 와서는 淮陰侯(회음후)로 강등시키고 말았다. 그 때 그는 兎死狗烹(토사구팽)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번은 劉邦이 韓信과 함께 여러 장수들에 대해 논할 기회가 있었다. 각 장수들의 장단점을 논하다 보니 화제가 자연히 두 사람에게로 옮겨가게 되었다. 먼저 劉邦이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 나는 군사 몇 명을 지휘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글쎄올시다. 폐하라면 잘 해야 십만 명이 될까요?”
“그럼 경은?”
“저야 물론 多多益善이지요.”
“하하하! 多多益善이라면서 어째서 나에게 사로잡힌 몸이 되었는고?”
劉邦은 가소롭다는 듯이 물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폐하께서는 병사의 長(장)은 되지 못하실지언정 장군의 長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에게 사로잡힌 이유지요.”
평범한 말 같지만 그의 말 속에는 뼈가 들어 있다. 淮陰侯로 강등된 데 대한 불만이 담겨있는 것이다. 사실 劉邦은 그를 淮陰侯로 강등시켰지만 언젠가는 重用(중용)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차 이번에 엉뚱한 말을 듣고 보니 여간 심기가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劉邦은 짐짓 크게 웃으며 내색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일로 해서 劉邦은 더욱 韓信을 의심하고 꺼리게 되었으며 韓信 역시 잔뜩 불만을 품고 杜門不出(두문불출)하고 말았다. 마침내 그는 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