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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뜯어보기]美-이라크 전쟁

입력 | 2002-09-01 18:56:00


《국제 뉴스를 담아내는 새로운 형식 ‘국제뉴스 뜯어보기’를 선보입니다. 이 형식은 하루에도 수천건씩 쏟아지는 국제뉴스를 독자의 관점에서 다시 구성하고 가공해서 그 내용과 흐름의 이면까지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이 기획란을 통해 각종 국제 현안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할 것인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월28일 연두교서 연설에서 이라크를 ‘악의 축’ 3개국 중 하나로 규정하면서 세계는 7개월여 동안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하지만 미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 질문은 우문이다. 미 언론에서는 이미 이라크전이 시작됐다.

워싱턴포스트는 5월24일 미국이 20만명의 병력을 동원, 공습과 특수작전으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의 전쟁계획을 최초로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6월23일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미군 25만명이 진격하는 전쟁계획을 보도했다.

두 신문의 보도는 미국이 개전 여부로 고민에 빠져있을 것으로 관측돼 온 것과 달리 전쟁계획 수립단계까지 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전쟁계획 보도의 결정판은 7월5일자 뉴욕타임스. 이 신문은 “미국은 이라크 남·북·서쪽 등 3개 방면에서 모두 25만명의 육해공 3군이 동시에 쳐들어가는 작전계획을 수립했다”면서 ‘중부사령부의 행동계획’을 인용, 구체적인 전쟁계획을 최초로 폭로했다.이 신문에 따르면 중부사령부는 해병대와 보병을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에 진격시키는 동시에 수백대의 전투기가 터키, 카타르 등 8개국 기지에서 발진해 이라크의 비행장, 철도, 광섬유 통신망 등을 초토화시키는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이 신문은 닷새뒤 10일에는 미국은 이라크 공격의 전진기지로 요르단을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속보를 전했고 이달 29일에는 바그다드를 먼저 초토화한다는 세부적인 계획을 보도했다. 한달 사이 3번이나 뉴욕타임스가 미군의 1급 비밀을 토대로 전쟁계획을 보도한 것.

부시 대통령이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아직 개전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동안 미 언론에는 이미 이라크전에 따른 경제적 손실 여부까지 보도되고 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같은 언론보도에 대노, 진상조사를 지시하는 한편 “비밀 정보의 유출은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저지할 국가의 능력을 저해하고 미국인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경고하는 메모를 7월12일 국방부 주요관리들에게 보냈지만 이 메모조차 이틀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보도됐다.

세금이나 사회복지 정책이 아니라 군사계획이 이처럼 상세히 유출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국가가 비밀을 간수하지 못하는 ‘무정부적’인 상황. 그러나 비밀을 흘리는 당사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뉴욕타임스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7월5일자에 한해서 취재원이 ‘보다 창의적인 전쟁계획의 수립을 원하는 사람’이라고만 기술했다.

이에 대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마이클 매커리는 “(행정부의) 의도적인 유출”이라면서 “(유출로 전쟁계획이 자주 알려지게 되면) 대통령이 국민의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 결정을 갑자기 내렸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버 연구소의 키스 에일러 연구원은 “기만전술이며 심리전의 한 측면”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도버해협을 바로 건너서 프랑스에 진격할 것으로 정보를 흘린뒤 프랑스 남부 노르망디에 상륙, 독일군을 따돌린 것처럼 정부가 의도적으로 가짜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컬럼비아대의 케네스 왈츠 교수는 “많은 가능성들이 유출되다 보면 사담 후세인은 어떤 가능성이 맞을지 예측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면서 “적을 혼란시키는 방법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라크전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프가니탄에서의 공습으로 소진된 위성유도 합동직접공격폭탄(JDAM)을 다시 만들고 지상군 20만명을 이라크 주변으로 전개하는 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동안 전쟁계획 고의 유출로 ‘바드다드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조성함으로써 전쟁의 효과를 대신하고 있는 것.

그러나 미 외교협회의 이라크 전문가 케네스 폴락 연구원은 “공격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공격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논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면서 “전쟁계획의 유출은 실제 전쟁시 병사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신보수주의란▼

폴 월포비츠(왼쪽)와 딕 체니

미국에서 신(新)보수주의 바람이 거세다. 신보수주의는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주창한다는 점에서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기존의 보수주의와 차이가 있다. 신보수주의는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것은 세계에 이익이 된다는 국가 이기주의적 사고와 잇닿아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국익은 도덕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은 세계에도 이익이 된다는 논리다.

중동정책에서 신보수주의는 ‘모든 길은 바그다드로 통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 온건 민주정권을 세울 경우 석유생산량을 늘릴 수 있어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고 이를 계기로 사우디의 민주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사우디에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사우디의 반(反)체제인사들이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벌일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선제공격론에 기우는 것도 신보수주의 영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폴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이 가장 대표적인 신보수주의자로 꼽히고 있으며 딕 체니 부통령 진영도 신보수주의로 경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워싱턴포스트 8월12일자).

민간에서는 ‘폴리시 리뷰(Policy Review)’ 6·7호에 게재한 ‘힘과 허약함’이라는 논문에서 허약한 유럽을 의식하지 말고 미국이 독자적으로 무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로버트 케이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과, 빌 크리스톨 ‘더 위클리 스탠더드(the Weekly Standard)’ 편집장이 대표적 인물. 부시 대통령이 휴가중 읽고 있는 ‘최고의 지휘부(Supreme Command)’의 저자 엘리어트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도 신보수주의자로 꼽힌다.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Q&A 이라크 공격 왜 하나▼

Q: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하려는가.

A:미국은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들어 왔던 이라크가 이들 무기로 미국을 직접 공격하거나 9·11 테러 배후인 알 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에 무기를 넘겨줘 간접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제2의 9·11 테러를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실제로 80∼88년 이란 및 쿠르드족과의 전쟁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전례가 있다.

Q:이라크는 얼마나 위험한 나라인가.

A:이라크가 97년이후 유엔 무기사찰단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상황은 베일에 싸여있다. 그러나 97년까지 유엔무기사찰단을 이끌었던 스콧 리터는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 인프라는 수백 번에 걸친 유엔 사찰로 거의 대부분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Q:이라크는 WMD를 만들지 않는다면서도 왜 무기사찰단의 활동을 재허용하지 않는가.

A:이라크는 걸프전 이후 유엔이 정한 이라크 제재조치를 해제 내지 완화시키기 위해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였다. 유엔은 이라크에 대해 6개월마다 20억달러어치의 석유만 수출하되 오직 식량과 기본 의약품 수입에만 쓰도록 하는 가혹한 조치를 내렸었다. 그러나 미국이 무기사찰단 허용과 관계없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축출하려 함에 따라 후세인 정권은 무기 사찰을 계속 받는 것은 굴욕적이라고 판단했다.

Q: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다른 의도는 없는가.

A:이스턴 런던대학 조지 몬비오트 정치학 교수는 ‘제국의 논리’라는 글(웹진 ‘Z매거진’)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군수산업을 유지 내지 성장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보잉,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같은 미국의 초대형 군수업체들은 98년 이후 규모면에서 매년 50∼100% 성장해 왔고 9·11 테러 이후 성장 속도는 더 빨라졌다. 미국 노동인구의 2%(220여만명)를 고용하고 있는 미 군수산업은 미 경제활성화, 고용안정의 부수적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Q:이라크의 방대한 유전과는 관계 없는가.

A: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이라크 석유 매장량은 1120억 배럴로 2650억 배럴의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다. 중동경제연구(MEES)의 편집책임자인 제랄드 버트는 “후세인 제거는 중동석유자원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로막는 최후의 장애물을 처리함을 의미한다”고 말한바 있다.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 이라크를 마음대로 통제해 사우디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