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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금지약물 규정부터 만들어라

입력 | 2002-09-02 17:25:00


90년대 후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뉴욕 양키스의 티노 마르티네스란 왼손타자가 뉴스의 초점이 됐다. 96년까지만 해도 한 시즌 평균 홈런이 17개가 채 안되는 평범한 중거리 타자였던 그는 97년들어 갑자기 44홈런을 치며 일약 홈런타자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마크 맥과이어나 배리 본즈가 70홈런 시대를 열기 이전. 한 시즌 40홈런을 넘긴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에 당연히 주위에선 약물복용 의혹을 제기했고 마음 고생이 심했던 그는 이듬해 홈런수가 28개로 뚝 떨어진 뒤 2000년에는 16홈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한 올해는 15홈런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프로야구 선수의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한 금지약물을 복용했더라도 마약류만 아니라면 제재를 할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 40홈런-40도루 클럽을 처음 열었던 호세 칸세코와 98년 70홈런을 쳤던 마크 맥과이어는 은퇴후 자신의 약물복용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혔었다.

지난주 국내 프로야구를 온통 들끓게 한 진갑용 파문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된다. 진갑용은 고려대 재학 당시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대표 에이스였던 부산고 동기생 투수 손민한이 연고팀 롯데에 지명되는 바람에 OB로 밀려났고 그나마 후배 포수인 홍성흔이 입단하자 삼성으로 트레이되는 좌절을 겪어야 했다.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아픔을 겪은 진갑용은 이를 악무는 훈련과 타고난 기본기 덕분에 삼성에서 재기에 성공했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에 약물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국내 프로야구계에도 약물은 건강식품이나 영양제로 둔갑한 채 비공식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널리 퍼져 있다는 게 정설이다. 관절이 좋지 않은 선수가 속칭 ‘대포’라는 주사 한 대만 맞으면 한 시즌을 아프지 않고 보낼 수 있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진갑용이 몇 번이나 자신의 말을 뒤엎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약물복용이 실정법상 죄는 아니지만 양심상 견디기 어려운 가책이었기에 잠시 방황을 하긴 했지만 결국은 진실을 털어놓은 진갑용의 용기가 가상하게까지 느껴진다.

이제 메이저리그도 내년 시즌부터는 스테로이드계 약물부터 복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국내 프로야구도 하루 빨리 관련 규정을 만들어 ‘법이 없으므로 해서 생기는 선의의 피해자’를 없애야 할 것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