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공중에서 내려다본 강원 강릉시 노암동의 물빠진 수해현장. 온갖 쓰레기가 마을을 뒤덮어 흉측한 모습을 드러냈다. - 강릉연합
태풍 루사가 지나간 2일 강원 강릉시내에는 ‘황사(黃砂)’가 휘날렸다. 물 빠진 도로에 말라붙은 토사는 흙탕물로 범벅이 된 차들이 지날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돼 날아 올랐다.
거리 곳곳에서는 굴착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흙더미와 부러진 가로수를 치우고 있었다. 비에 쓸려 인도와 차도에 몸을 비스듬히 걸친 승용차들과 상가들이 내놓은 ‘쓰레기 산’으로 비좁아진 거리는 하루 종일 교통 정체가 계속됐다.
물에 잠겼다가 모습을 드러낸 노암동 일대는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땅을 가리키는 신호등이 수해의 참상을 대변했다. 인근 노암초등교에서 사흘째 대피 중인 주민 문병기씨(57)는 “맨손으로 치우기에는 잔해가 너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31일 장현저수지 제방이 붕괴돼 물이 온 마을을 휩쓸고 간 장현동 43통 일대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30여채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복구’라는 말이 무의미했다.
끊어진 다리 저편에서 매몰된 집터들을 바라보던 이웃마을 문소리양(15·강릉여중 2)은 “친구네 집도 사라져버렸다”며 울먹였다.
장병들도 비지땀 - 강릉연합
31일 오후 9시반경 강릉시의 상수원인 오동댐과 연결된 지름 800㎜짜리 상수관이 터지면서 시작된 ‘물 전쟁’은 2일 기온이 섭씨 34도까지 치솟는 바람에 더욱 견디기 힘들어졌다.
강릉의료원은 ‘올 스톱’ 상태였다. 31일 폭우로 자가발전기와 배전반이 있는 지하실이 침수돼 사흘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측은 중환자실 환자 4명과 산소호흡기를 쓰는 환자 5명을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전산작업이 되지 않아 약을 타러 오는 통원치료 환자에게는 의사들이 처방전을 직접 써줬다. 찾아오는 환자는 문 앞에서 돌려보냈다.
시민들은 해가 모습을 드러낸 이날 복구를 꿈꿨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물을 뽑아낼 펌프와 양수기는 태부족이었고 웬만한 수해지역에선 복구를 위한 중장비를 구할 수조차 없었다.
강릉중앙시장 지하에 들어찬 물을 펌프로 뽑아내던 한 소방관은 “중앙시장 정도 되니까 펌프를 쓸 수 있지 웬만한 피해지역에선 펌프를 구할 엄두도 못 낸다”며 “장비와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한탄했다.
‘인재(人災)’를 말하는 이재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강릉시 구정면 주민 10여명은 이날 강릉시청에서 31일 농업기반공사가 수위가 높아진 동막저수지 물을 방류하지 않아 제방이 터져 농지 수십만평과 가옥 70여채가 파손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강원도는 이날 도내 수해지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중앙정부에 요청했다. 또 식수난을 겪는 2만여 가구에 생수 6만5000병을 공급하고 서울시 등에서 지원 받은 소방차량 20대 등 모두 47대의 급수차량을 투입했다.
김진선(金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