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자동차를 상대로 한 사기사건의 주범인 전종진(全鍾鎭)씨가 재판 도중 해외로 달아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보석 피고인에 대한 허술한 신병관리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3900억원대 금융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변인호(卞仁鎬)씨가 99년 구속집행 정지 기간에 중국으로 달아난 데 이어 발생한 사건이어서 비판 여론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전씨에게 이례적으로 보석을 허가한 것은 2000년 7월. 재판부는 피해자인 아시아자동차측이 “책임자가 구속 상태에서는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없다”며 전씨의 석방을 요구하자 보증금 1억원을 조건으로 보석 결정을 내렸다.형사처벌보다는 4000억원대의 피해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피해자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전씨가 “브라질 관계자들과의 협상 등을 통해 사건을 마무리짓겠다”는 각서와 함께 아시아자동차측에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지급한 정황도 작용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후 전씨가 사건 해결에 나서는 척하다가 지난해 7월 잠적했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시아자동차측이 전씨의 보석을 취소해 달라는 탄원서를 여러 차례 냈지만 “이미 도주한 상태여서 실익이 없다”며 결정을 미뤘다.
당시 재판부 관계자는 “얽힌 돈 문제를 풀겠다며 양측이 합의한 상황에서 전씨를 석방했고 이후 법원이 신병 관리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중형이 선고된 피고인을 1억원의 보석 보증금을 조건으로 풀어준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보석 보증금은 거액의 재산을 축적한 일부 경제사범들에게는 신병을 묶어둘 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또 보석 결정 때 주거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지만 실제로 이를 관리, 감독할 제도가 없는 것도 문제다.
검찰은 보석 결정 이후 피고인의 신병관리 책임은 전적으로 법원에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도 5월 보석 취소 결정이 나온 뒤 전씨의 소재 파악에 나서 뒤늦게 전국에 지명수배 조치를 취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전씨는 누구▼
사기 혐의로 재판 도중 해외로 도피한 전종진(全鍾鎭·37)씨는 무려 4000억원대 수출 사기 행각으로 아시아자동차가 망하는 데 한 요인을 제공 한 인물.
전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76년 부모와 함께 남미 파라과이로 이민간 뒤 브라질로 가 80년대 초 봉제공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아시아자동차의 브라질 현지법인인 AMB를 비롯해 8개 계열사를 거느린 세트그룹 회장으로 성장했다. 교민사회 및 평소 친분을 쌓았던 정관계 인사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바탕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5㎝의 훤칠한 키에 태권도사범, 오토바이선수 등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 전씨는 브라질 군수뇌부 자녀들과 친분을 쌓아 부동산 관리를 맡아줬고 군정이 무너지자 이들에게서 상당한 재산을 흡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