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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삼성 SOC연구소 가보니…

입력 | 2002-09-04 17:34:00



‘우리는 10년 후를 준비한다.’

삼성전자 ‘SOC(System On Chip)연구소’의 모토다.

삼성전자 수원단지의 정보통신연구빌딩 26층에 있는, 겉보기엔 석·박사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평범한 연구소다.

그러나 삼성에서는 이 연구소 설립을 1983년에 비유한다. 고(故) 이병철(李秉喆) 삼성그룹 창업주가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선언한 해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린 것은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마찬가지로 SOC연구소를 세움으로써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정식 출사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SOC의 시대가 열린다〓SOC란 첨단 디지털제품들을 움직이는 여러 개의 칩을 하나로 뭉뚱그린 복합칩이다.

SOC연구소 오영환(吳榮煥·부사장) 소장은 “PC의 중앙처리장치(CPU), 사운드칩, 그래픽칩, 메모리 등 다양한 칩들이 합쳐지고 있으며 디지털TV는 2005년경 핵심 부품들이 1개의 칩으로 통합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SOC는 ‘전자산업 자체’가 된다”고 말했다.

전자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인텔의 CPU, 퀄컴의 베이스밴드모뎀 등 여러 부품을 조립해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각각의 칩이 하나로 통합돼 직접 핵심 부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전자산업 자체가 위태롭다.

삼성전자 시스템LSI(비메모리반도체) 사업부 임형규(林亨圭) 사장은 “메모리에만 의존하면 앞으로 반도체산업도, 전자산업도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2년 1430억달러 크기인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비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66%. 2007년경에는 71%로 늘어날 전망이다.

▽백가쟁명과 합종연횡〓최근 포스트(Post)PC의 세기를 맞아 세계 반도체, 정보기술(IT), 가전업계는 치열한 백가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황제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가전과 홈네트워크 분야에 뛰어들고, 컴퓨터 CPU로 10여년간 IT업계를 지배한 인텔이 통신모뎀 등 모바일 분야에 진출했다.

비메모리반도체 업계 2위이자 통신모뎀의 제왕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는 컴퓨터시스템 분야로 손을 뻗었다.

휴대전화 컴퓨터 멀티미디어기기 등 전자제품들이 융합되면서 업계간 구분이 사라지고, 반도체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 전자업계의 ‘황금알’인 휴대전화, 디지털TV, DVD플레이어 등 디지털제품들은 대부분 핵심 칩을 해외에 의존한다.

만약 퀄컴이 핵심 부품을 다른 회사에 먼저 공급하면 한국업체들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IMT-2000 휴대전화 신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절박한 위기감으로 비메모리반도체 개발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메모리가 투자와 생산능력이 중요한 ‘규모의 사업’이라면 비메모리는 아이디어와 설계능력, 핵심기술 확보가 주 요소. 제품이 너무 다양해 한두 가지로 대규모 수익을 올리기도 어렵다. 삼성전자는 인텔의 CPU에 맞설 알파칩을 개발했으나 시장에서 잊혀지는 등 몇 개의 야심적 프로젝트에서 좌절을 겪었다. 다행히 첨단 디지털시장에서는 아직 완전한 패자(覇者)가 나타나지 않았고, 세(勢)를 불리기 위한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있는 SOC연구소. 오영환 소장(오른쪽)과 연구원들이 미래 디지털컨버전스에 대비한 핵심 기술 개발을 다짐하고 있다. 수원〓김동주기자 zoo@donga.com

▽‘지금 열차에 타지 못하면 앞으로 10년을 잃는다’〓삼성전자는 1997년 처음 비메모리 사업을 독립시켜 시스템LSI사업부를 만들었다. 1999년 말 플래시메모리 개발 등에서 업적을 인정받은 임형규 사장이 취임했고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한 권오현(權五鉉) 부사장, 노형래(盧亨來) 전무 등 메모리 신화를 탄생시킨 ‘스타’들이 속속 합류했다. 비메모리 분야에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시스템LSI사업부에 내린 경영진단은 “중장기 전략이 없다”였다. 디지털가전, 정보통신 사업부 등 회사의 자원이 총동원돼 지난해 10월 SOC연구소가 세워졌다. 올해 초에는 TI 기술담당 최고경영자(CTO)였던 오 부사장이 소장으로 영입됐다.

오 소장은 미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국내외 대학, 연구소, 기업들을 뒤지며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 소장은 “디지털 가전과 모바일 기기 등 삼성전자의 제품들을 일류화하고 차세대 핵심사업에 대비한 기술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사명을 갖고 있다”고 연구소의 임무를 설명했다.

수원·기흥〓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