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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칼럼]˝또 총리서리…˝

입력 | 2002-09-04 18:08:00


두 사람의 국무총리지명자가 연거푸 국회의 임명동의를 얻지 못한 데는 야당의 반대뿐 아니라 여론의 힘도 크게 작용했다. 이 사실은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자주 듣는 대통령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결코 무소불위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삼권분립 침해한 위헌▼

우리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을 견제하는 여러 가지 장치를 갖추고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 밖에서는 국회, 사법부, 헌법재판소, 국민의 선거권 행사와 여론, 그리고 언론에 의해 견제를 받으며, 행정부 안에서는 내각책임제적 요소들에 의해 견제당한다. 내각책임제적 요소로는 국회의 국무총리 임명동의권과 해임건의권 이외에 국무회의의 중요 정책에 대한 심의제도, 국무총리의 장관 임명 및 해임 제청권, 그리고 부서권(副署權)이 대표적이다. 이런 견제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도 3권 위에 군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재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총리서리 임명문제는 바로 대통령에 대한 견제제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이번에도 총리서리 임명을 강행한다면 우리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다.

현재의 혼선은 건국 당시의 총리 임명에 대한 국회의 ‘승인’제가 나중에 ‘동의’제로 바뀐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승만 정권인 1공 전반기(1948∼54년)에는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헌법이 규정해, 대통령의 임명이 있은 다음에 국회가 ‘승인’하는 사후추인제였다. 서리제도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1공 후반기(1954∼60년)에는 아예 총리제가 없었으며, 2공(1960∼61년)은 내각책임제였으므로 지금의 총리와는 헌법상 지위가 달랐다.

박정희 정권인 3공(1962∼72년) 때는 총리를 두기는 했으나 대통령이 단독으로 임명했다. 유신정권인 4공 때부터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 ‘동의’란 이 조항의 문맥에 나타나듯 ‘사전동의’를 말한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유신정권과 신군부 정권은 국회의 ‘동의’제를 1공 때의 ‘승인’제로 변질시켜 서리를 임명한 다음 국회의 ‘동의’절차를 밟는 변칙을 거듭했다. 지금 정계와 일부 언론 매체에서 자주 쓰는 ‘인준’이라는 말도 ‘승인’과 ‘동의’의 차이를 흐리게 하는 잘못된 용어다.

김영삼 정권은 서리제도가 위헌이라는 비판을 존중해 6명의 총리를 임명하면서 한 사람의 서리도 내지 않고 모두 국회의 사전동의를 얻어 정식 총리로 발령을 냈다. 김대중 정권 역시 초대 김종필 총리를 당초에는 서리로 임명치 않고, 먼저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이 엿새 동안 두 번이나 좌절되자 그를 서리로 임명하고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후 박태준 총리 임명 때는 국회의 사전동의 절차를 제대로 밟았으나, 이한동 총리 임명 때는 다시 서리제도를 부활시켰다. 이때는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어 국회의 동의안 통과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새로운 상황이 생겨났다.

정부는 장상 장대환 두 총리서리에 이어 다시 서리를 임명하겠다고 밝히고 과거 정권의 서리 임명을 선례로 들었다. 그러나 1998년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4명이 서리 임명을 위헌, 3명이 합헌, 2명이 판단보류를 한 사실도 있는 만큼 정부는 더 이상 서리제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기야 정부와 국회는 현 정권 출범 때 총리 임명동의안이 5개월 동안 통과되지 않아 장관임명 제청을 전(前) 정권의 총리가 대행하고 재작년 5월 이한동 총리 때부터는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상황이 바뀐 데 대해 벌써부터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직무대행제 도입 바람직▼

헌법 규정대로 국회의 사전동의를 얻어 반듯하게 국무총리를 임명하면서 국정공백도 막으려면 해답은 총리 직무대행제도를 도입하는 길밖에 없다. 정부는 정부조직법이 총리 유고시에 직무대행을 임명하도록 규정한 것을 근거로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다. 그러나 총리 임명을 둘러싸고 당초 예상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이 생겨난 이상 계속 오기를 부리지 말고 기존 관행을 고치는 것이 정치의 올바른 길이다. 정부는 정부조직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거나, 아니면 이번 기회에 깨끗이 해당 조항을 개정해 총리 유고 때처럼 부총리를 총리 직무대행에 임명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소모적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