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잔인한 달.’
요즘 월가에선 이런 구절이 나올 법하다. 9월은 역사적으로 주가 하락폭이 가장 컸던 달이다. 게다가 28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작년 ‘9·11 테러’가 바로 코앞에서 펼쳐졌다. 월가 사람들이 그런 9월을 좋아할 리 없다.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연휴 뒤 열린 3일 시장은 폭락했다. 지수는 4%가량씩 떨어졌다. 주요 악재는 세 가지. 3일 도쿄 증시가 19년 만에 최저치까지 폭락했다는 소식은 뉴욕증시가 열리기 전부터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8월 중 제조업생산이 예상보다 부진했고 신규 주문이 줄었다는 발표도 장을 얼어붙게 했다. 세계최대 반도체회사인 인텔의 실적 하향 전망과 거대 금융사 씨티그룹에 대한 매도 의견은 지수들을 끌어내렸다.
‘9·11’ 1주년, 기업실적 예고 시작, 6일 실업통계 발표, 미국의 이라크 공격 임박설…. 한 애널리스트가 내미는 ‘9월 악재 리스트’는 꽤 길어 보인다. 최근 5개월째 내림세인데 시장은 이 달에도 악재와 싸워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노동절을 전후해 매스컴에 나온 고용 관련 이야기들도 암울한 톤뿐이었다. ‘직장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제목도 눈에 띄었다. 레이오프(불경기의 일시해고) 노동자 수가 7월 8만1000명에서 8월엔 11만8000명으로 급증했는데 IBM이 4000명의 레이오프를 계획 중이라는 소식까지 겹쳤다.
압권은 노동절 당일 미국 3위의 장거리 화물운송회사 컨솔리데이티드 프레이트웨이스의 휴업 선언. 닫힌 회사문 앞에서 직원들이 회사로 전화를 걸자 최고경영자(CEO) 존 브링코의 녹음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휴는 가족과 함께 보내십시오…. 아주 급하고 불행한 소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용은 즉각 해지됩니다.” 이 회사 1만5500명의 직원 중 80%는 즉각 실직했고 나머지는 회사 청산작업을 맡는다.
9월의 불안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겁먹은 투자자 앞에서 애널리스트들조차 “‘9·11’이 저만치 지나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9·11 테러’의 ‘충돌’과 ‘붕괴’를 겪으면서도 그리 크게 무너지지 않았던 뉴욕증시가 요즘 ‘불안감’에 맥을 못 추고 떨고 있다. 앞으로 경제나 증시가 좋아진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투자자들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