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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기자의 섹스&젠더]남자는 유별난 종족

입력 | 2002-09-05 16:21:00


최근 50대 신사와 식사를 하다가 재미있고도 꽤 일리있는 말을 들었다.

‘남자는 판단력을 잃으면 결혼을 하고, 참을성이 사라지면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지면 재혼을 한다’는….

그분의 주장에 일단 수긍을 한다면, 성(性)적으로 문제없는 대부분의 남자는 이 세 종류로 분류된다. 판단력 부족한 남자, 참을성 부족한 남자, 기억력 부족한 남자. 단, 대다수 남자가 판단력을 잃게 되므로 판단력 부분은 고려치 않기로 한다.

1. 기억력 부족한 남자

‘남자는 마누라가 죽으면 사람들 앞에서 엉엉 울다가도 뒷간에 가서 몰래 웃는다’는 옛말이 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헌것’보다는 ‘새것’을 좋아한다는 거다. 여기 현대판 ‘뒷간’ 이야기가 있다.

김봉남씨(가명·57)는 3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지난해 5세 연하의 이순정씨(가명·52)와 재혼했다. 봉남씨의 첫 아내는 외아들이 7년 전 교통사고로 숨진 후 시름에 잠겨 지내다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조강지처를 저 세상으로 보낸 뒤, 남편은 뜻하지 않게 돈방석에 올라 앉았다. 아내가 남편 모르게 사 둔 재개발 ‘딱지’(입주권)가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 것이다. 아내가 여기저기 투자해 불려놓은 재산이 족히 10억원은 됐다.

아들과 아내를 모두 잃은 봉남씨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집 한 채만 남기고 모두 현금으로 바꿔 투자신탁에 맡겼다. 그저 낚시나 하고 친구들이나 만나며 살아야지, 했던 것이다.

친구들은 돈 많고 사람 좋은 봉남씨를 진심으로 걱정했고 도우려 했다. 자연스럽게 재혼 말들이 오갔다. ‘내 팔자에 무슨 재혼을…’ 하고 고사하던 봉남씨는 어느날 지금의 아내 순정씨를 소개받았다.

순정씨는 한번 결혼했으나 아이 없이 곧 헤어지고 혼자 살아왔다. 또 무뚝뚝하던 첫 번째 아내와 달리 상냥하고 애교가 넘쳤다. 손맛으로 솜씨낸 요리도 일품이었다.

재혼식은 온동네 친지들을 모아 대궐 같은 호텔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그러나 봉남씨에게도 근심은 있었다. 아들의 죽음과 이어진 아내의 병간호로 봉남씨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확인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돈으로 하룻밤을 사는 성품은 더욱 아니었다. 홀로 지낼 때는 몰랐는데, 재혼을 하고 보니 성(性)적인 부분이 가장 신경쓰였다.

이윽고 순정씨와의 첫날밤. 아니나 다를까 잘 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두 번째 아내에게 미안했던 봉남씨는 절친한 친구로부터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를 얻어 복용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여자들은 이 대목에서 생각한다. 죽은 아내만 불쌍하다고. 조강지처가 모아둔 풍족한 물질을 누리며 새 아내와 알콩달콩 살고 있는 봉남씨에게 은근히 부아도 난다. 봉남씨는 모든 남편의 훗날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왜냐. 남자는 기억력이 부족하니까.

2. 참을성 부족한 남자

지난달 28일 서울시내 S호텔 레스토랑에서 참을성 부족한 남자를 만났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정당당씨(가명·40)는 어깨가 튼튼하고 근육이 발달해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벌벌 떠는 ‘권력’을 갖고 있다.

당당씨는 98년 이혼했다. 초등학생 아들은 엄마와 미국으로 떠나면서 “아빠, 다른 여자랑 결혼하면 안 돼”라고 당부했다. 천만에. 다시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매사에 남편을 꽁꽁 묶어두려 했던 ‘공주형’ 아내는 지긋지긋했다.

당당씨는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이혼남녀들이 사회적 성공에 장애를 겪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이혼을 떳떳이 밝히면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이 오히려 머쓱해진다.

섹스도 문제없다. 신원이 확실하고 환경이 비슷한 또래 전문직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가끔씩 외롭다는 생각은 든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고 싶을 때, 그리고 만사가 귀찮아 마스터베이션할 때.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재혼담당 커플매니저 문정희씨는 참을성 부족한 남자들이 결혼했던 아내의 유형을 다음 세가지로 요약한다. 자신의 틀에 가족을 끼워 맞추는 아내,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집안 돌보기에 소홀한 아내, 일이나 공부에 치중하는 똑똑한 아내.

참을성 부족한 남자 나름대로는 인생의 아픔과 상처가 있겠다. 그러나 또 다른 남자는 “S대 출신의 똑똑한 의사 아내가 매사에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이혼한 뒤, 아이러니컬하게도 재혼상대로 또 똑똑한 여자를 찾고 있다”고 고백했다.

‘남자는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이라는 독일 함부르크대 남성교수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촌철살인에 경의를 표한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