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열기에 휩싸인 유럽에 중도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달 총선을 치르는 독일 등 4개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실용주의적 중도노선을 채택하는 지도자들이 각광받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9일자)가 보도했다. 반면 올 상반기 유럽에서 득세했던 극우 정당들은 내부 분열과 급진 노선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으로 인해 급속하게 세력을 잃고 있다.
22일 총선을 치르는 독일에서는 그동안 자신이 표방해온 신(新)중도주의 노선에서 ‘궤도 이탈’을 해온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후보가 기민-기사당연합의 에드문트 슈토이버 후보에게 고전하고 있다. 슈뢰더 후보는 지지기반인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추진해온 것이 유권자들의 등을 돌리게 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15일 선거가 예정된 스웨덴에서는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사민당의 고란 페르손 후보(현 총리)의 압도적인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올 상반기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 부상했던 극우 세력은 급속하게 몰락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4월 극우파 정치인 핌 포르투완 피살 후 그가 이끌던 리스트당은 7월 총선에서 집권연정에 참여하는 데 성공했으나 극심한 내부 분열로 장관 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다. 급진주의 정치인을 거부하는 범유럽적인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21일 총선을 치르는 슬로바키아에서 극우 정당인 민주슬로바키아운동(MDS)의 블라디미르 메시아르 후보가 당선될 경우 회원국 가입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총선이 예정된 마케도니아에서도 알바니아계 분리주의 정당인 통합민주연합(DUI)의 알리 아흐메티 후보가 당선될 경우 EU와 NATO 가입이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고 있는 유럽의 중도주의 열풍이 90년대 중반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표방했던 ‘제3의 길(The Third Way)’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런던 경제대(LSE)의 로버트 테일러 교수는 “유럽 정치에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가고 있다”면서 “좌파와 우파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 정치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