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기가 두렵다. 국무총리서리는 두번씩이나 국회에서 부결됐고 병풍(兵風), 검찰 의혹, 공자금 부채, 탈북자문제, 아파트 투기 등 온통 암울한 소식뿐이다. 여기에 더해 200명이 훨씬 넘는 사망자 실종자를 낸 수해는 상당 부분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고 한다. 수해 뉴스를 접하는 필자의 마음이 이렇듯 참담한 데 수해를 겪은 본인들의 심정은 어떠하랴.
안타까운 마음을 태우다 생각한 것은 “이제 기성 지도자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차세대 지도자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땀 흘리며 봉사하는 젊은이들▼
4월 서울 이태원의 골목식당에서 만난 50대 일본인 부부는 “일본 대학생들은 패기가 없고 너무 편한 것만 좋아해서 큰일”이라고 한탄했다. 이에 비해 “한국 대학생들은 대단히 의욕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에 따르면 중국 대학생들은 중국 정부의 출산억제 정책에 따라 거의 외아들 외딸인 데다 극심한 입시경쟁과 과잉보호 아래 공부만 하고 자라서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거의 없는 ‘왕자’ ‘공주’들이란다. 소위 일류 대학을 다니는 엘리트들이 장차 국가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이들이 과연 영도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의 소리가 중국에서도 높다는 것이다.
꼭 이 일본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필자는 우리의 차세대가 한국을 이끌고 나갈 정치지도자로서 현 기성세대보다 훨씬 희망적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볼 만한 가까운 예로, 태풍이 휩쓸고 간 수해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봉사하는 젊은이들에게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중국 옌볜에서 농촌지원 활동을 펴는 우리 대학생에게서, 필리핀과 몽골에서 사랑의 집을 짓는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에게서, 독거노인의 발을 정성스레 씻어주는 봉사단원에게서도 밝은 전망을 보았다.
월드컵 경기 중에 ‘붉은 악마’ 응원단이 보여 준 협동과 질서의식은 앞으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질서문화의 극치였다. 경기가 끝난 뒤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나, 기저귀를 두 개씩 소지하고 갔던 치밀함, 수만명의 붉은 악마가 광화문 지하도를 통과하기 위해 층계를 내려갈 때도 그들은 한목소리로 ‘천천히, 천천히…’라고 제창하며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의 위기를 관리했다고 한다. 우리 기성 지도자들에게도 이렇듯 치밀한 계획성과 질서정신이 있었다면, 이번 태풍도 그 많은 산과 둑, 도로와 철교를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대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한 자전적 에세이를 접하면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30여년간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저 무심하게 학생들을 대해왔던 필자는 어느날 가난과 고통, 가족간의 사랑과 갈등, 투병 등을 담은 젊은 세대들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나서 이들의 정신적 성숙함과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여러모로 구별된다. 초중고교에서 대학입시를 목표로 ‘딱딱하고 네모난 교실 속에서 감옥생활’과 같은 10대를 보낸 이들은 ‘부모들 세대는 돈을 벌기만 하고 쓸 줄 모르는 바보 세대’라고 비판한다.
또 자신들에게는 ‘현재가 중요’하고, ‘벤처기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 40대에 은퇴해 부부가 BMW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추구했던 ‘야망과 성공’보다는 ‘핵가족 위주의 행복론’을 구가한다.
이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해외연수로 닦은 유창한 외국어와 열린 마음으로 국제 무대에서 당당하게 의사표시를 한다. 예컨대 컴퓨터사업가 안철수, 프로골퍼 박세리, 피아니스트 임동혁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정상에 오른 한국인들이다. 물론 우리 차세대들에게 약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소비성, 향락성 등은 특히 개선해야 할 단점이다.
▼그대들이 있기에 미래는 밝다▼
우리 국민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힘든 난관에 부닥쳤을 때 더욱 강해지는 ‘위기관리 능력’과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내는’ 신바람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차세대들이 이 같은 전통적인 특성을 잘 계승하고 여기에 그들만의 강점을 더해 정치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혁의 신화를 이룩했으면 좋겠다. 그럴만한 능력과 가능성이 충분히 엿보인다. 머지않아 이들 중에서 세계적인 자질을 지닌 정치 지도자가 나와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 우리 정치도 미래가 있을 게 아닌가.
홍연숙 한양대 명예교수·영문학 yshong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