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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멜로 양념친 조폭영화 '가문의 영광'

입력 | 2002-09-05 20:01:00

김정은의 코믹 연기가 돋보인다. 사진제공 태원엔터테인먼트


지난해부터 줄을 잇는 ‘조폭’ 영화 붐이 1년이 넘도록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문의 영광’은 폭력과 욕설을 원료로 삼고 코미디로 간을 한 ‘조폭’영화 요리법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또 한 편의 ‘조폭’ 영화다. 멜로로 듬뿍 양념을 쳤다는 것이 이전 ‘조폭’영화들과의 차이점이다.

서울대법대를 졸업하고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대서(정준호)는 술에 취한 채 모르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하필이면 그 여자 진경(김정은)은 전남 여수를 주름잡는 조직폭력배 집안의 외동딸. 진경의 오빠들은 대서를 혼내주러 나섰지만 그의 학벌을 확인한뒤 마음이 변한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에게 좋은 배필을 골라주고, 엘리트 사위를 들여 말그대로 ‘가문’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오빠들은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 위한 작전에 나선다.

‘가문의 영광’은 추석 대목을 겨냥해 개봉되는 한국 영화중 흥행 성적이 괜찮을 것으로 점쳐지는 영화. 하향평준화한 이전 ‘조폭’류 영화에 비하면 ‘업그레이드’된 대목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조폭’ 코미디 특유의 과장된 연기와 대사가 바탕에 깔려 있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은 과장된 조폭 연기보다 주연배우 김정은과 정준호의 코믹 연기다. 김정은은 순발력있는 표정연기로, 곱게 자란 외동딸과 ‘조폭’ 집안의 막내 이미지를 수시로 오가며 코미디의 중심을 잡고 있다.

반면 ‘조폭’ 집안과 폭력배 오빠들의 성격을 담은 에피소드들은, ‘웃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안간힘을 쓰지만 전혀 웃기지 않는 코미디언의 과장된 연기처럼 ‘썰렁’하다. 진경의 큰오빠인 인태(유동근)와 아들의 대화, 인태의 아내와 아들 담임 교사가 싸우는 에피소드 등은 삭제해도 줄거리가 훼손되지 않을 만큼 군더더기다.

정준호와 김정은의 결혼식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을 통해 ‘조폭’ 오빠들이 동생의 행복을 위해 희생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보기 민망할 만큼 억지스럽다. 어차피 웃자고 만든 기획 영화인데도, 뭔가 감동을 줘야 한다고, 웃고 끝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대서와 진경의 로맨스가 맺어지는 경쾌한 결말이면 될 걸, 감동에 대한 강박으로 억지스럽게 혹을 하나 더 붙여놓은 인상이다.

‘반전’도 유행이 된 듯 영화 마지막에서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지만, 이 또한 깜짝 효과를 주기보다 싱겁기만 하다. 현대카드로부터 전체 제작비의 20%인 7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원 받아 영화 내내 현대카드가 화면에 비친다. 감독 정흥순. 15세이상 관람가. 13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